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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이재영-비소설/국내 2024. 1. 11. 12:31
1.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한다. 잃고 싶지 않은 것과 하루빨리 잊고 싶은 것이 공존하는 생의 한 땀 한 땀. 그때는 참 사람이 좋았지 싶다가 겨우 떼어낸 악연이 떠오르고, 일이 많아서 참 좋았지 싶다가 일하느라 망가진 몸의 통증이 느껴진다. 어느 시기든 약분해버릴 수도 없는 그 자체로 버티고 있는 고달팠던 시간이 있어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p.32 2. “사람 사귀는 일은 참 시시하다. 너무 자주 얼굴을 대하다보면 서로가 새로운 가치를 마주할 시간이 없어진다. (...) 인간은 무리 지어 살면서 서로의 발에 걸려 곱드러진다. 이렇게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소중한 마음과 정성스런 만남은 이어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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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나무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비소설/국외 2023. 11. 30. 10:54
1. 봄이면 벌거벗은 잔가지에 꿈틀대는 생명을 느낄 수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 꽃차례들은 작은 오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간 흔적처럼 보인다. 어느날 잔가지들이 굵어지고 환해지고 불룩해지기 시작한다. 이튿날쯤이면 나란히 짝을 이룬 집게발 같은 잎과 옅은 색, 미색, 분홍색이 감도는 꽃이 잔가지를 뒤덮는다. 봄기운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폭발한다. 낮이 더 길어지면 수액과 상큼한 향, 무성해진 나뭇잎에 몸을 가린 새들의 청아한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나무껍질은 이 모든 것을 예전에도 겪었다. 그러나 늙어가는 버드나무의 앙상한 얼굴과 벚나무의 벗겨지는 껍질도 밝은 빛 속에서는 덜 초췌해 보인다. 11월 초 세상이 온통 습하고 어둑해질 무렵이면 숲은 꺼져가는 잉걸불이나 갈색 설탕 같은 낙엽들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