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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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上> -무라카미 하루키-소설/국외 2024. 1. 11. 13:28
1. 온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 가을에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서글펐고,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래가는 것만 같았다. 태양의 햇살과 풀 냄새, 그리고 작은 빗소리조차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p.17 2. 어떤 사람은 잊히고, 어떤 사람은 모습을 감추며, 어떤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비극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p.45 3.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이고, 그 때문에 도넛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p.115 4. “하지만 밝아오지 않는 밤이 없는 것처럼, 끝나지 않는 교통 체증도 없지요.” “그야 그렇겠지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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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시간> -넬레 노이하우스-소설/국외 2024. 1. 11. 12:47
1. 집에 오면서 나는 열렬했던 사랑의 모든 추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 잠그고 열쇠를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내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나 자신을 괴롭히거나 슬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p.119 2. “사실 인생이란 결정의 연속이야. 우리는 감정에 따라 대부분의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우연이나 운명이라고까지 간주하지.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이 내린 결정의 총체일 뿐이야. 그런 결정 때문에 운명처럼 보이는 것들이 일어나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이미 일어난 일을 원망하는 건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언젠가는 과거를 놓아주고, 실수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어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것이 가져올 수도 있는 결과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해.” p.12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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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소설/국외 2023. 12. 29. 16:35
1.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을 두려워할까? 자신들을 둘러싼 어둠속 어디에 있는, 자신들도 알고 있는 존재들을, 언제라도 섬광등 불빛 아래 더는 무시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이 훤히 드러날지 모르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자신들의 평균에 맞지 않는 악령, 성형수술을 마다하는 아르곤, 야만스럽고 서툴게 후루룩거리며 피를 마시는 흡혈귀, 디오더런트를 쓰지 않아서 악취가 나는 짐승, 아무리 쉿 하며 조용히 시켜도 제 이름을 드러내려 하는 온갖 존재들. 조지는 말한다. 다른 여러 괴물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이 자그마한 나를 두려워하지. p.25 2. 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조지는 조지가―사람들에게 알려져왔고 사람들이 알아볼 그 조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조지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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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소설/국내 2023. 12. 29. 16:22
1.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p.21 2. 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은 우윤이 아팠던 시기와 겹친다. 대학병원의 대기 시간은 길었고, 난정은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다. 아픈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어져서, 그러나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성격은 아니어서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가야만 했다. 끝없이 읽는 것은 난정이 찾은 자기보호법이었다. 우윤이 낫고 나서도 읽은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우윤의 병이 재발할까봐, 혹은 다른 나쁜 일들이 딸을 덮칠까봐 긴장을 놓지 못했다. 언제나 뭔가를 쥐어뜯고, 따지고, 몰아붙이고, 먼저 공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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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 스쿨> -벤 러너-소설/국외 2023. 12. 29. 14:47
1. 핵심은 서로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깊은 배려를 담아 상대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과거에 적으로 여겼던 인물을 다시 생각해볼 만큼, 꼭 모든 문제에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에 이를 만큼. 2. 애덤은 베를린에서든 토피카에서든 소변과 표백제 냄새만 진동하지는 않는 방에서, 자기 침대에서 기계에 매이지 않고 죽는 것이 승리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218 3. 대학생의 연애가 해외에서의 로맨스로 침몰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이야기라는 사실은 상관없었다. 자신의 삶이 되면 그 무엇도 클리셰로 여겨지지 않는다.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