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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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소설/국내 2023. 12. 5. 11:21
1.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 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p.52 2. 연애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했다. 되도 않는 이야기를 토해내고 나면 조금 괜찮아지는 편이지만, 언젠가 이야기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인으로, 독립적인 경제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며, 간절히 유지하고 싶은 상태이다. 그러니 이렇게 가끔씩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오늘은 괜찮은가, 이번주는 괜찮은가 꼼지락꼼지락거려보는 것이다. 원전폐기물 보관함처럼, 위태롭지만 조용하게, 엉망인 내부를 숨기면서 사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뭔가 중요한 부분이 고장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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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허수경-비소설/국내 2023. 11. 23. 11:11
1. 발굴지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가을빛이 짙어지고 있다. 그 여름 햇빛은 3, 4일가량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어디다 버려두었는지, 지중해를 지나서 알프스를 넘어 중부 유럽으로 들어서면 어느덧 빛은 잠 속에서 낙낙하게 옹알거리는 착한 아기처럼 자물거리고 있다. 가을빛 아래 스산거리는 나무들, 아직도 빛을 잃지 않은 여름꽃들, 그러나 빛은 여름의 시간을 잃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에 익숙한 빛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여름 내내 내 눈에 익숙한 빛은 사납고 거세고 나의 모든 구석을 달구는, 그리하여 그 빛에 나라는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폭력이었다. 폭력의 빛은 그 여름 내내 나를 그의 벗으로 만들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작은, 허물어진, 몇 개의 토기 파편만을 남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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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비소설/국내 2023. 11. 8. 09:49
1. 사실 대부분의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나 고혈압은 정해진 수치에 이르러야 병으로 진단받게 되는데 아직 정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치가 점점 오르는 중이라면 그는 병의 전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미병이라 부른다. 이 미병의 시기는 치료가 수월한 반면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꼭 우리가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pp.44-45 2.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