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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소설/국외 2023. 11. 7. 13:18
1. 누구나 언젠가는 살아오면서 숱하게 봐 온 미소나 몸짓에 진저리를 치게 되어 있다. 세계 질서는 틀에 박힌 변화만을 반복해 왔고, 뉴스는 더 이상 새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뉴스news’라는 단어 자체가 조크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영영 깨지지 않는 사이클 안에 갇혀 버렸다. 그것도 밑을 향해서만 천천히 돌아가는 사이클 안에. 무엇보다도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간들에 대한 관용이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는 게 문제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좋았지만 이제는 스스로 귀를 뜯어 버리고 싶을 만큼 진절머리 나는 후렴을 가진 노래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랄까. p.52
2. 사람들에게 장소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한 발만 담가 둔다. 나머지 한 발은 디지털 세상에 빠져 있다. p.166
3.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인간들이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십일 세기는 이십 세기의 저질 리메이크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쩌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절대 겹치지 않는 각자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재앙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공감대가 점점 줄어드니 평화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p.198
4. 하지만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감정은 계산이 안 된다는 것을.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미묘한 상처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p.199
5. “가끔 시간을 멈추고 싶어질 때가 있어. 행복한 순간에. 그럴 땐 교회 종이 영원히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두 번 다시 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하늘이 찌르레기 떼로 뒤덮일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시간에 휘둘리면 살 수밖에 없잖아. 우린 류트의 현들이나 다름 없어. 안 그래?” p.208
6. “나의 생애는 끔찍한 불행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으나 그 대부분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몽테뉴) p.330
7. “불안은 자유가 느끼는 현기증이다.” (키에르케고르) p.357
8. 바로 이것이 이십일 세기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걸 다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마케팅은 우리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쓴다.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굳이 원하도록 만드는 전략 말이다. 그게 연봉을 삼만 파운드나 받아도 가난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열 개 나라를 돌아다녀 봤어도 해외여행을 거의 못해 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고. 주름이 하나만 보여도 너무 늙었다고 여겨지고, 포토샵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못생겼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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