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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박형준-
    비소설/국내 2023. 11. 24. 14:43

     

     

    1.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와 연락이 잘 닿지 않게 된다. 연락이 닿아도 어딘지 모르게 그녀는 심드렁하다. 그녀가 말하길,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만을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녀의 대화 상대가 테오도르 한 명에서 N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 그녀는 대화 상대가 늘어나는 일은 운영체제의 시스템상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테오도르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는 단순한 대화 상대가 아니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며 항변한다. 테오도르는 그렇게 누군가의 유일한 존재에서 보통의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그 순간의 고통을 무방비 상태로 맞아야 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애인에서 수많은 고객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현실. 그가 느낀 슬픔의 본질은 ‘유일한 한 사람(only one)’이 ‘단지 그들 중 한 사람(just one of them)'으로 바뀐 것이다. p.64

    2. ‘우리만큼은’이라는 구절이 ‘우리마저도’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p.78

    3. 사랑이란 ‘미쳤다가, 미쳤었다는 걸 깨달았다가, 그래도 다시금 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p.90

    4. 상처는 상처다. 상처는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기에 상처다. 거기에 세상에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 또한 존재한다. 이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아물 수 없다. 리는 생이 멈추는 그날까지 계속 살아갈 것이다. 고칠 수 없고, 고칠 생각도 없이, 고장난 채로. 그래서 아름답지 않더라도 살아갈 것이다. p.135

    5. 그래서, 그러나, 그리고, 그럼에도 우린 사랑했다. 어쩌면 하나의 사랑은 무수한 접속사들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랬음에도 우리는 헤어졌다. 수많은 접속사들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한 문장의 사랑에 비로소 끝내 마침표가 찍힐 때의 아릿함과 저미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p.159

    6. 사랑의 측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어쩐지 모를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냅니다. 우리는 ‘우리’로서만 의미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이 이탈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의미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남겨진 한 사람만을 ‘우리’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엠마는 아델에게 “네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라고 말합니다. 덜 사랑하고 더 사랑받았던 한 사람의 고마움이자 따뜻함일 수 있지만, 무한히 애틋한들 조금의 사랑조차 될 수 없다는 절망의 대사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아픈 대사였습니다. pp.2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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