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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수전 올리언-
    비소설/국외 2023. 12. 4. 11:35

     

     

     

    1. 나는 대출이 끝난 뒤 차에 올라타 우리가 그날 손에 넣은 책 전부를 무릎에 올려놓길 좋아했다. 탄탄하고 따뜻한 책들의 무게가 나를 누르는 느낌, 마일라 필름이 덮인 표지들이 허벅지에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돈을 지불하지 않은 물건들을 들고 떠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다. 우리가 읽을 새 책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짜릿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나는 어떤 책부터 읽을지, 언제까지 반납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반납일 전까지 금방 사라져버릴 이 마법 같은 유예의 시간 동안 우리의 속도를 조절할 방법을 정하는 엄숙한 대화였다. p.19

    2. 우리 가족의 도서관 사랑은 극진했다. 다독 가족이었지만 책장에 책이 그득하다기보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걸 더 좋아했다. 부모님은 책을 귀하게 여겼지만 대공황 때 어린 시절을 보내 돈이란 있다가도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빌릴 수 있는 물건을 굳이 돈 주고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고생하며 배운 분들이었다. 그런 투철한 절약정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님은 책이란 읽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집에 모셔놓고 두고두고 돌볼 물건, 손에 넣을 목적의 기념품 같은 게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은 여행이었다. 기념품은 필요 없었다. p.20

    3. 나는 이 오래된 도서관처럼 상처 입은 아름다움과 외로움이 서린 황량한 건물을 본 적이 없다. 버려진 건물에는 한 번도 가득 차본 적 없는 듯한 공허보다 더 깊게 떨리는 아픔이 존재한다. 건물은 잃어버린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공기에 작은 흔적을 남겨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부재가 여기에 존재하고 머물렀다. p.94

    4. 기억을 공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더 이상 그걸 기억하지 못하면 공유된 기억이 존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 기억은 부러진 회로, 캄캄해진 추억이 되어버릴까? p.119

    5. 잊힌다는 생각을 끔찍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단순히 내가 개인적으로 잊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잊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인생의 총합이 무無라는 것, 기쁨과 실망, 아픔과 즐거움과 상실을 경험하고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기지만 우리가 사라지면 마치 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흔적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 적막함을 잠시 들여다보면 인생의 총합은 결국 제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패턴 없이 펼쳐지고 삶은 그저 거칠고 무작위적인 불가해한 사건, 멜로디 없는 흩어진 악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알게 되거나 관찰하거나 상상한 무언가를 기록해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삶이 당신 이전의 삶들에 반영된 것을 보고 이후의 삶에도 반영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질서와 조화를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형태와 목적을 지닌 더 큰 이야기, 감지할 수 있는 친숙한 과거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미래의 일부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실에 매달린 깡통에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다음 깡통과 실에 메시지를 속삭인다. 책을 쓰는 것은 도서관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전한 저항 행위다. 기억의 지속성을 믿는다는 선언이다. pp.119-120

    6. 세네갈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예의 있게 표현할 때 그 혹은 그녀의 도서관이 불탔다고 말한다. (...) 우리 정신과 영혼에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새겨진 책들이 들어 있다. 각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 분류하여 내면에 저장한 기억들의 컬렉션,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개인 도서관이다. 다른 누구와도 완전히 공유할 수 없는, 우리가 죽으면 불타 사라지는 무엇이다. p.120

    7. 도서관은 고독을 누그러뜨리기에 좋은 곳이다. 완전히 혼자일 때도 수만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대화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지 않아도 그 안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고, 말을 하면 누군가가 들어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를 늘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확신이었다. p.377

    8. 나는 열람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어떤 이들은 책에 고개를 숙이고 있고 몇 명은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순간을 누리며 그냥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내 것이 아니지만 내 것처럼 느껴지는,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이 얼마나 멋지고 특별한 느낌인지 들려주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다. 도서관이 던지는 무언의 약속은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을 물리치는 것 같다.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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