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훈
-
<가장의 근심> -문광훈-비소설/국내 2023. 12. 7. 13:43
1. 누구와 싸우는 것도, 싸워서 이기는 일마저 부질없음을 나는 잘 안다. 삶에서 싸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자각 때문이었는지 생활 안팎의 갈등은 대체로 유야무야 어렵잖게 끝나지 않았나 싶다. 만약 싸워야 한다면, 나는 어느 한 명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전체와 싸운다고 생각하려 했고, 수십 수백 명보다 더한 궁극의 적수는 나 자신이라고 여기곤 했다. p.18 2. 결국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거의 낯선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낯선 채로 죽어 간다. 만인은 만인에 대해 이방인일 뿐이다(‘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란 것도 낯설기 때문에 서로 상처 입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사이에서조차, 사실은 전적으로 모르는 가운데 그저 몇 가지 ‘안다’는 착..
-
<심미주의 선언> -문광훈-비소설/국내 2023. 10. 23. 10:10
1. 매일을 지탱하는 나의 느낌과 생각과 몸과 언어가 결국 내 글의 주인이 되게 한다. 속되고 비루해도 때로는 참신할 수 있고, 원칙의 고수가 용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솔하다면, 시정(市井)의 이야기가 역사와 경전(經典)의 이야기보다 못할 것 없다. 그렇듯이 나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실존의 기록이 그 어떤 집단의 기록보다 더 사회적일 수 있다. p.8 2. “침묵하거나, 아니면 침묵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라.” (살바토르 로사) p.28 3. 자화상이 화가의 자기선언이라면, 이 자기선언을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숨겨진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독자성을 향한 미켈란젤로의 노력이 얼마나 신산스러웠는가를 잘 보여준다. 예술은 이 운명과의 대결-싸움이면서 놀이여야 할 대결이다. 그것은 삶의 운명과 더불어 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