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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문광훈-비소설/국내 2023. 10. 23. 10:10
1. 매일을 지탱하는 나의 느낌과 생각과 몸과 언어가 결국 내 글의 주인이 되게 한다. 속되고 비루해도 때로는 참신할 수 있고, 원칙의 고수가 용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솔하다면, 시정(市井)의 이야기가 역사와 경전(經典)의 이야기보다 못할 것 없다. 그렇듯이 나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실존의 기록이 그 어떤 집단의 기록보다 더 사회적일 수 있다. p.8
2. “침묵하거나, 아니면 침묵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라.” (살바토르 로사) p.28
3. 자화상이 화가의 자기선언이라면, 이 자기선언을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숨겨진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독자성을 향한 미켈란젤로의 노력이 얼마나 신산스러웠는가를 잘 보여준다. 예술은 이 운명과의 대결-싸움이면서 놀이여야 할 대결이다. 그것은 삶의 운명과 더불어 놀면서 동시에 이 운명에 거스르기 위한 것이다. 자, 주위를 우선 둘러보자. 언제나 문제는 현실이다. pp.40-41
4. 자기제한이 없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자유란 일차적으로 개인적 행동의 자유이지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정치적 조건과 경제적 토대 그리고 물질적 환경에 의해 제약된다.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제도는 상보적이다. 자유란 결국 ‘자기구속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에 다른 아니다. 자유와 제약이 인간 삶의 근본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p.53
5. 심미적 경험은 바로 이 평생에 걸친 자기형성/자기교육/자기교양의 훈련과 관계한다. p.79
6. “우리는 물론 우리자신을 우리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즉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일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의를 끌고 우리를 부지런하게 하며, 우리의 열정을 일으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로 돌아가기 위해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로 돌아가기 위해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주의와 눈, 마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존재는 평생을 통해 자아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우리자신을 우리의 자아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푸코) 이 같은 자기전향의 의미는 단순히 ‘주체의 계보학’이나 ‘실존의 기술’이라는 철학사적 사상사적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갖 광고와 선전, 유행과 외관에 휩쓸린 채 자기를 잃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에서도, 아니 지금이야말로 더없이 갈급한 전언이지 않는가 여겨진다. p.107
7.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듯이, 공포와 관련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겁쟁이가 되고, 지나치게 태연하면 무모한 이가 된다. 그러니까 용기는 겁 많은 자의 나약함과 무모한 자의 만용 사이에 있다. 그렇듯이 쾌락에서 지나치면 방탕이 되고, 모자라면 무감각이 된다. 따라서 절제는 방종과 무감각의 중용이다. 그렇듯이 돈의 씀씀이에서 지나치면 ‘방종’ 혹은 ‘사치’가 되고, 모자라면 ‘인색’이 된다. 그 중간은 ‘호탕함/너그러움’이 될 것이다. 또 명예에서 지나치면 ‘허영’이 되지만, 모자라면 ‘비굴함’이 될 것이다. 그 중간은? 아마도 ‘긍지’나 ‘자부심’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분노에서 지나치면 ‘성미가 급한 자’가 될 것이고, 모자라면 ‘생각 없는 자’가 될 것이다. 분노와 무심함의 중간은 아마 온화함이 될 것이다. p.193
8. 그러므로 선은, 적어도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선한 자는 선한 행위만 원하기 때문이다. 선한 자에게는 선행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p.208
9. 텅 빈 것을 바라는 것은 근원적인 것-아무것도 없는 시원적 상태를 바라는 것과 같다. 고요나 침묵 그리고 어둠은 이 근원상태의 몇 가지 예에 해당한다. 요요적적(寥寥寂寂)한 세계-쓸쓸하고 휑하며 적막한 상태야말로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 이 말없는 세계는 옆에 누가 있다고 해서, 또 사랑하거나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가졌다고 해서, 없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고독은 생래적이고 존재론적이며, 따라서 불가피하다. 상허는 《무서록》의 또 다른 수필 〈고독〉에서 쓴다.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이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고독은 한 겹이 아니다. pp.304-305
10. 공재가 세상을 떠나자, 수십 년 친교하던 이서는 이렇게 적었다. “마음이 서로 거스르지 않았으나, 구차하게 합해지지도 않았다.” 따르되 합치지 않는 것, 합하되 따로 가는 것. 그렇다는 것은 어울리되 각자는 자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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