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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비소설/국내 2023. 10. 20. 12:40

    1. 서로 아무 데서나 가리지 않고 뒤섞이는 한국 요리의 느낌이 뜨거운 열정과 적극성으로 다가온다면, 재료와 양념이 따로 또 같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브뤼셀 요리는 어딘가 고요한 성찰과 관조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서로에게 엄청난 오지랖을 펼치며 많은 것을 사사건건 간섭하는 한국 문화가 엄청난 피로감을 안겨주는 만큼이나 따스한 정겨움이 넘친다면, 한 냄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양념과 재료처럼 상대의 고독을 존중해주는 그들의 문화는 차분하고 고요한 대신 끝없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p.40

     

    2. “인생을 짐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조차도, 삶이란 소중한 축복이다.”(윌터 스콧) p.65

     

    3.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생시키고, 전혀 다른 모험 속으로 던지게 하는 장소야말로 치유의 장소이자 성장의 장소다. pp.67-68

     

    4. <프리마베라>가 놀라운 첫 번째 이유는 제목처럼 ‘봄’을 상징하는 이 그림의 전체적인 바탕색이 숨막히는 검은색이라는 사실이었다. 흔히 봄 하면 연둣빛 새순의 빛깔, 벚꽃의 화사한 연분홍빛이 떠오르지만, 이 그림은 그렇게 봄기운이 만연한 시간이 아니라 봄이 막 시작되려는 듯한 찰나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듯하다. 겨울 숲의 검고 어두운 기운이 아직 화면 전체를 감돌고 있는 가운데 봄을 상징하는 수많은 신화적 인물들이 마치 각자가 한 떨기의 꽃처럼 땅속에서 피어오른 듯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당을 딛고 맨발로 서있지만 마치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듯, 너무도 가볍고 산뜻한 발걸음으로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빛 하나하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담아 전하고 있다. p.113

     

     

    5.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옛 모습을 존중하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의 모습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곳은 다 좋다. 그런 장소에 얽인 추억은 오래오래 마음속에 둥지를 틀어 더 단단한 그리움으로 여물어갔다. 그런 장소에서 나는 깊은 해방감을 느꼈다. p.128

     

    6. 겨울 여행이 매력적인 것은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을 상쾌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고민할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비결이고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고는 기질에 따른 것”이라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욱 불행해지는 사람들에게 버나드 쇼는 이런 조언을 남겼다. “뭔가에 몰두해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움직이며 살아있을 뿐. 그건 행복보다 기분 좋은 상태다.” pp.145-146

     

    7. 건물이 크지 않은 대신, 장소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크기가 아니라 깊이로 말하는 건물이었다. 겉보기에는 커 보이지 않지만, 구석구석에 엄청난 분량의 책이 숨어 있었다. p.178

     

    8. 포르투갈어로는 고맙다는 단어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남자는 ‘오브리가두(Obrigado)’, 여자는 ‘오브리가다(Obrigada)’가 감사 인사라고 한다. 일본어의 감사 인사 ‘아리가토’라는 말이 포르투갈어 오브리가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p.196

     

    9.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다시 읽으며 내가 리스본에 간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나 포르투갈인 아마데우를 동경하는 꼼짝없는 백면서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반드시 떠나야 할 실용적인 이유도 없는 곳으로 매년 기갈증에 걸린 사람처럼 떠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내 안의 결핍 때문이 아닐까. 불꽃 같은 삶을 진짜로 살아낼 수는 없고, 오직 책으로, 영화로, 그림으로, 음악으로만 경험하는 내 인생에 대한 결핍감. 그 모자람과 아쉬움이 사무쳐 1년에 한 번씩 열병처럼 도져서, 나는 머나먼 여행을 떠나곤 한다. 여행은 내게 ‘힐링’이 아니다. 휴식도 아니다. 더욱 격렬한 삶을 향한 갈증이고, 일상에서는 미처 살아내지 못한, 막연하지만 갈급한 그리움의 해방구다. p.199

     

    10. ‘나는 삶에게 극히 사소한 것만을 간청했다. 그런데 그 극히 사소한 소망들도 삶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 줄기의 햇살, 전원에서의 한 순간, 아주 약간의 평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빵, 존재의 인식이 나에게 지나치게 짐이 되지 않기를, 타인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리고 타인들도 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런데 이 정도의 소망도 충족되지 못했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中) p.203

     

    11.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 결코 성취하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는 자 결코 성취하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는 자 언제까지고 노예다.” 괴테. p.271

     

    12. “이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열정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인내심에 달려있다.” 괴테. p.273

     

    13. 삶도 나 자신도, 타인들도, 현미경처럼 가까이 관찰하기를 좋아하던 20대와 달리, 지금은 ‘거리 두기’야말로 삶의 피로를 견디는 비결임을 알 것 같다. 그가 밉고 싫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넘어 ‘숲’을 보기 위해, 세상의 평면도를 넘어 조감도를 굽어보기 위해, 나는 모네처럼 대상에서 ‘거리 두기’를 배우고 싶어진다. p.283

     

    14. 오슬로의 상징이자 행정적 중심으로도 유명하지만 해마다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장소로 더욱 유명한 곳이 바로 오슬로 시청이다.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의 수상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리고, 오직 평화상만이 노벨의 유언에 따라 오슬로에서 수여된다고 한다. p.299

     

    15. “삶이 푸른 잎사귀라면, 예술은 아름다운 꽃이다.” 매킨토시.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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