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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 -장석주-
    비소설/국내 2023. 10. 23. 10:08

     

    1. 뇌는 감각 입력과 신경 시스템 전체를 장악하고 처리한다. 우선 감각은 세 종류이다. 특수 감각으로 시각, 청각, 미각, 평형감각이 있고, 일반 감각으로 촉각, 온도감각, 위치감각, 고유감각이 있고, 진동 감각으로 분별촉각과 비분별촉각으로 나뉘는 촉각이 있다. 이것의 도움으로 인간은 걷고, 위험을 감지하며, 생존 활동을 펼칠 수가 있다. 어쨌든 이 뇌의 주름들 속에서 마음, 생각, 의식, 언어들이 생성되고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울고, 웃고, 먹고, 생각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결정하며,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 p.26
     
    2. 남풍이 실린 바다 내음, 여자의 피부 온기, 담배 냄새, 어렴풋한 예감 따위는 빠르게 휘발되어버린다. 이 감각적 기호들은 흐르고 번지면서 빨리 사라지는 것이기에 삶의 덧없음과 조응한다. 이것은 깨고 나면 사라지는 여름날의 꿈과 같다. 누추한 삶이 품은 달콤한 여름날의 꿈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그 꿈이 황홀한 것은 한 번 가고 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40
     
    3. 소설을 읽는 일은 기묘한 고독 속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p.42
     
    4. 아내가 가출하고 나서야 ‘나’는 아내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의식 한구석에 남은 회의, 즉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관하여 그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 우리는 당황하면서 공포에 빠진다. p.123
     
    5. 하루키 소설에는 우리가 잘 아는 보통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벽이 있다. 벽은 많다. 자폐의 방이나 우물을 만드는 벽, 도시와 세계를 둘러싼 벽돌! 벽은 이것과 저것, 안과 밖, 현실과 환상을 가르고 나누는 경계이고, 주체의 능동성을 제한하는 한계이며, 자유로운 소통과 통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벽은 강고함과 자폐의 상징이고 환영이다. 그것은 상징 층위에서 수시로 움직이고, 무시로 생겨나고, 있던 것이 사라지기도 한다. 벽은 아버지, 국가, 국경, 권력, 법, 규범, 죽음, 금기의 표상이다. 이 벽이 품은 상징성을 되새겨보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벽의 바깥쪽으로 나가는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고, 벽의 안쪽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삶의 리얼리티를 잃는다.” p.168
     
    6. 삶은 살아 있는 자들의 것이지만, 그 기초를 떠받치는 것은 부재의 현존이다. 하루키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 뒤에 남기고 간 결락감”(「토니 다키타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고 없는 사람과 함께 산다. 죽은 자가 만든 부재를 끌어안고, 그 부재의 근원에서 나오는 옛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 먹으며 사는 것이다. p.176
     
    7. 서울을 떠나 경기도 안성의 금광호숫가에 집 짓고 내려와 산 지 십 년쯤 되었을 때, 문득 돌아보니 처음 서울을 떠날 때 내 마음의 슴베를 물들인 것은 변방에 떨어진 낙오자의 패배감과 다시는 어떤 정점에 올라서지 못하게 될 거라는 쓸쓸한 자각이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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