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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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얼굴> -이청준-소설/국내 2023. 12. 5. 11:10
1. 언제나 망설이기만 할 뿐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 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자기 실수만이 아닌 소녀의 사건을 자기 것으로 고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양심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p.69(‘병신과 머저리’) 2. 그는 글을 쓰게 된 애초의 동기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위로와 구제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또 한술 더 떠 그것을 다시 복수심 때문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복수심이라는 개인적인 동기와 관련하여 바깥 세계에 대한 작가의 책임은 서로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런 관계 안에서 작가의 책임이라는 걸 찾아볼 수밖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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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스> -파스칼 키냐르-비소설/국외 2023. 11. 1. 13:11
1. 그리스어 ‘sarko-phage’는 ‘살을-먹는-무엇’이라는 의미이다. 세 가지 주석. 1)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하지만 모든 죽음이 먹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돌이킬 수 있다. 즉 죽음으로 파괴된 것은 섭취함으로써 가능하다. 육식동물의 경우에 실은 죽음이 유일한 영양분이다). 2) 돌이킬 수 없는 운동에는 방향성이 없다(단지 가지 못했을 수도 있는 곳에 이제는 도달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3) 기원은 시간 내에서 이어진다(옛날의 돌이킬 수 없는 특성이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의 만회 불가능의 토대가 된다). p.59 2.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솟아오르는 시간과 되풀이되는 ‘역사’ 한가운데 위치한 비장한 시간의 섬이다.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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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소설/국외 2023. 10. 31. 13:42
1. 몇 주일의 세월이 견딜 수 없이 따분하게 흘러갔다. 이 분노와 갈등으로 얼룩진 절망적인 시간 때문에 내 젊음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꿈이 삶에서 그토록 빨리 와해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분통도 터뜨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돌발적이고 강렬하게 성장한 데에 또한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pp.50-51 2. "그런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니면 비참하게 하는지 물어도 될까요? 아니면 그 둘 다입니까?“ “아,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요.” p.84 3. 죽음은 냉정했지만, 뛰쳐나간 아이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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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보들레르-소설/국외 2023. 10. 30. 12:35
1. 그러나 승냥이, 표범, 암 사냥개, 원숭이, 전갈, 독수리, 뱀 우리 악의 더러운 가축 우리에서 짖어대고 악쓰고 으르렁거리고 기어다니는 괴물들 중에서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를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pp.36-37('독자에게‘ 中) 2. Ⅳ. 초상화 「병」과 「죽음」은 모조리 재로 만든다. 우리를 위해 타오른 불길을. 그처럼 뜨겁고 다정하던 그 커다란 두 눈, 내 가슴 적신 그 입술, 향유처럼 힘찬 그 입맞춤, 햇빛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