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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속의 이방인> -로버트 레빈-
    비소설/국외 2023. 10. 31. 10:24

     

     

    1. 밀란 쿤데라는 <불멸>이라는 책에서 아주 근사한 표현을 썼다. “인간이라는 견본품에 있어, 일련번호란 바로 독특하고 우연한 특징들의 조합인 얼굴이다. 성격도, 영혼도,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도 이 조합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은 단지 어떤 견본품의 일련번호일 뿐이다.” p.19
     
    2. 미토콘드리아는 너무나도 산재해 있고 우리 세포의 기능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기술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미토콘드리아는 독립적인 유기체다. 인간과 같이 복잡한 유기체가 형성되기 한참 전에 박테리아로서 자연을 방랑하던 존재다. (...) “그런 관점에서, 나는 자기 가족의 즐거움과 생계를 위해 세포핵과 미세 소관과 뉴런의 복잡한 체계를 운영하며 호흡하는 박테리아로 이뤄진 거대하고 자동력 있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p.96-97
     
    3. 난 스스로를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획 중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래를 위한 계획은 그게 현재에 주는 기쁨에 의해 세워진다. 내 생각에는 바로 그래서 내가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다. 미래의 현실보다는 순간적인 기쁨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는 아니다. 미래의 나를 딱히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p.227
     
    4. 내가 생각하는 나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교활한 부분이 있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혹은 “생각이 없었어, 미안해” 이런 말들은 분명 유감을 표현하지만 그 행동은 진짜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순간 사과하는 나는 자기가 사과하고 있는 그 끔찍한 일들을 할 리가 절대로 없다는 말이다. 마치 개인적인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자기 회사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사과하는 기업 대표 같다. 사과를 하고 있지만 자신 역시 피해자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나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른 장본인에게 화가 난 상태야” 이 말이다. p.228
     
    5.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여신 키르케는 율리시스에게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지만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누구든지 넋이 나가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배를 몰다가 결국 바위에 배를 처박고 죽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율리시스는 이중계획을 실행한다. 우선 부하들이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밀랍으로 부하들의 귀를 막았다. 그러고는 부하들을 시켜 스스로 돛대에 묶였다. 노랫소리를 들어도 배의 경로를 바꿀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자유로운 선택을 구속적인 규칙으로 대체하는 것을 오늘날 법조계에서는 ‘율리시스의 계약’이라고 한다. p.237
     
    6.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예측할 때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성격보다는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의 성격이 더 나은 지표라는 것이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증명되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pp.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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