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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비 딕> -허먼 멜빌-
    소설/국외 2023. 11. 9. 11:10

     

     

    1. ‘유로클리돈이라는 광포한 바람을 생각할 때, 바깥에만 서릿발이 뒤덮인 유리창 안쪽에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창이 없어서 양쪽으로 모두 서리가 내리고 죽음의 사자가 버티고 선 창문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창이 없어서 양쪽으로 모두 서리가 내리고 죽음의 사자가 버티고 선 창문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상권 p.47

    2. 웃음거리를 넘치게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을 게 틀림없다. 상권 p.75

    3. 내가 생각하기엔 이승에서 그림자라고 부르는 게 실은 나의 실체인 듯하다. 또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탁한 물을 더없이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내 생각엔 몸뚱이는 더 나은 실체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상권 p.86

    4. ‘더 그랬다’고 말한 건, 몸의 온기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어느 한 부분은 차가워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특징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상권 p.111

    5. 간밤에 그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질색한 걸 생각하면, 아무리 완고한 편견이라도 사랑으로 구부리자고 들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비록 침대 위라고 해도 퀴퀘그가 내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었는데, 그의 모습에 평온한 가정의 기쁨이 충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상권 p.112

    6. ‘세상은 공동 자본으로 세운 주식회사 같은 거야. 어딜 가나 마찬가지야. 우리 식인종은 이 기독교들을 도와줘야 해.’ 상권 p.124

    7. 우리 선량한 장로파 기독교도는 이런 일에 자비심을 가져야 하며, 이교도든 아니든 누군가 이런 문제에 반미치광이처럼 빠져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퀴퀘그와 요조와 라마단에 대해 지닌 생각이 어처구니없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퀴퀘그는 자신이 뭘 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으니 그냥 놔두는 수밖에. 상권 p.155

    8. 이렇듯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것들이 전부 거듭해서 흰색과 관련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 색의 가장 깊은 관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뭔가가 도사려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피의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영혼에 안겨 준다.
     흔쾌한 쪽의 연상과 단절되어 본질적으로 끔찍한 사물과 결부됐을 때, 흰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공포가 극한으로 치닫는 이유는 바로 파악하기 어려운 이 특징 때문이다. 상권 p.321

    9. 그러나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고하는 깊은 적막이 어쩌면 폭풍 자체보다 더 무서운데 실제로 적막은 폭풍을 감싼 포장지에 불과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무해해 보이는 총이 치명적인 화약과 탄알과 폭발력을 담고 있듯 그 안에 폭풍을 싸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되기 전까지 노잡이들 옆에서 가만히 똬리를 튼 밧줄의 우아한 휴식. 그것이야말로 이 위험한 물건의 어떤 모습보다 순수한 공포를 한껏 자아낸다. 하지만 더 말해 무엇하리? 인간이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인 채 살아가는 것을. 모든 인간은 목에 올가미를 건 채 태어나는 것을. 그러나 조용하고 교묘하게 상존하는 삶의 위험을 깨닫는 건 느닷없이 갑작스레 죽음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뿐이다. 당신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더라도 작살이 아닌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저녁의 난롯가에서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공포를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권 p.460

    10. 다만, 인간 대부분은 이런저런 방식을 통해 다수의 인간과 샴쌍둥이로 결합된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거래하는 은행이 파산하면 끝장이다. 약제사가 실수로 약에 독을 넣으면 죽는다. 물론 극도로 조심한다면 이런 상황을 비롯해서 삶의 무궁무진한 불운을 피해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퀴퀘그의 원숭이 밧줄을 조심스럽게 다뤘건만, 이따금 그가 밧줄을 휙 잡아채는 통에 배 밖으로 거의 미끄러져 떨어질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서 결코 망각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내가 다룰 수 있는 건 다만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것이다. 하권 .p.65

    11. 고래처럼 거구인 생물이 그렇게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토끼보다 작은 귀로 천둥소리를 듣는다니 희한하지 않은가? 하지만 눈이 허셜의 망원경 렌즈만큼 크고 귀가 성당 입구처럼 널찍하다면, 고래가 더 멀리 보고 더 예리하게 들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니 뭣 때문에 마음을 <넓히려고> 노력하는가. 그저 예민하게 만들면 될 것을. 하권 p.81

    12. Ⅰ. 잡힌 고래는 잡은 자의 것이다.
    Ⅱ. 놓친 고래는 먼저 잡는 자가 임자다. 하권 p.177

    13. 소유가 법의 절반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속담이 아니던가? 이 말은 물건을 어떤 경로로 소유하게 됐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소유가 법의 전부인 경우도 많다. 러시아 농노나 공화국 노예의 근육과 영혼이(,) 소유가 법의 전부인 상황에서(,) 잡힌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탐욕스러운 지주에게 과부의 마지막 한 푼이 잡힌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저기 푯대 대신 문패가 달린, 아직 들통 나지 않은 악당의 대리석 저택, 저것이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비통한 파산자가 가족을 굶기지 않기 위해 돈을 빌릴 때 중개인 모르드개가 뜯어내는 턱없이 비싼 선불 이자, 그것이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영혼을 구제한다는 대주교가 등이 휘게 일하는 노동자 몇십만 명(대주교가 도와주지 않아도 전부 천국에 들어갈 게 확실한)의 얼마 안 되는 빵과 치즈에서 10만 파운드를 뜯어낼 때, 티끌 모아 쌓아 올린 10만 파운드가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하권 p.180

    14. 그러나 잡힌 고래의 원칙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면, 그와 한 쌍을 이루는 놓친 고래의 원칙은 적용 범위가 더 넓다. 그건 국제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콜럼버스가 왕과 왕비를 위해 푯대 대신 에스파냐 국기를 꽂았던 1492년의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었나? 폴란드는 러시아 차르에게 무엇이었나? 그리스는 터키에게 무엇이었나? 인도는 영국에게 무엇이었나? 멕시코는 결국 미합중국에게 무엇이 될까? 전부 놓친 고래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는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들이 지닌 신앙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겉만 번지르르하게 남의 말을 주워섬기는 사람들에게 철학자의 생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커다란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그대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권 p.181

    15. 하지만 나는 오래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결국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환상을 낮추거나 최소한 변경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행복은 지성이나 공상이 아닌 아내와 사랑, 침대, 식탁, 안장과 난롯가, 시골 같은 곳에 놓아야 한다.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에 기름통을 영원토록 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에 그리는 환상의 상념 속에서 나는 줄지어 선 천사들이 저마다 경뇌유 통에 손을 담그고 있는 통을 봤다. 하권 p.210

    16. 그러나 이런 게 인생이다. 우리 인간이란 오랜 노동 끝에 세상이라는 커다란 배에서 적지만 귀중한 고래 기름을 뽑아낸 후 지긋지긋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몸의 오물을 깨끗이 씻어 내고 영혼의 거처를 깨끗이 유지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자마자, 그러기 무섭게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이 외침에 영혼이 사로잡혀 또 다른 세계와 싸우기 위해 노를 젓는다. 젊은 날의 낡은 일상을 되풀이한다. 하권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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