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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양창순-비소설/국내 2023. 11. 15. 10:44
1. ‘담백(淡白)’이라는 한자도 흥미롭다. 담談이라는 글자는 삼수변에 불화(火)가 두 개 있다 .타오르는 불길을 물로 끄는 형상이다. 여기서 담은 ‘물이 맑다’ ‘싱겁다’를 의미한다. 백(白)은 ‘희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맑은 것으로 하얀색만한 게 없다. 하지만 왜 ‘담’자의 경우, 두 개의 불화에 삼수변을 썼을까? 아마도 그런 맑은 마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는 뜻 아닐까? 내 마음에 타오르는 불을 물로 끄는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처럼 감정적이고 반응적인 사람에게는 ‘담백함’만큼이나 효율적인 처방이 없는 것이다. p.14
2. 이 역시 내 생각이지만, 계절 중에서는 겨울이 가장 담백함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추운 날 오히려 쨍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겨울은 봄날의 들뜸도 없고, 여름날의 화려함이나 열정, 피곤함도 없으며, 가을날의 서글픔도 없다. 조용히 숨을 중기고 다음 해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이 마냥 수동적인 기다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장 움직임이 적으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자연의 지혜가 담긴 기다림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에 양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고, 겨울을 상징하는 오행인 수(水)의 오행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도 이와 연관된다.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겨울을 담백함과 연결 짓곤 한다.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약간의 가라앉음과 통찰력, 약간의 후회와 설렘, 약간의 담백한 기대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은 겨울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이 있기에 우리는 약간의 성숙이라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pp.30-31
3. 또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만큼, 내 이야기는 가능한 줄이고 절제하는 편이 좋다. 남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가족도 그렇다. p.43
4.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으로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조금만 살아보면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매사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남과 나를 비교하며 자책 모드를 가동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담백한 삶 같은 건 애초에 머릿속에 없다. 그러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항상 자신을 몰아붙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열정과 독선, 확신과 아집이 종이 한 장 차이이듯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p.45
5. 그러니 내가 하는 실수가 실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에 대해 보다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53
6. 결국 적절하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나부터 조금은 더 담백해져야 하고 심플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남을 비난하거나 흉보는 이야기는 혼자 일기장에 적고, 대신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할 것. 절대로 잘난 척하지 말고 힘들다고 징징대지도 말 것.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볼 것. p.63
7. ‘힘든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나를 힘들게도 만들고 즐겁게도 만든다.’ -에픽테토스- p.69
8. 우리가 기대치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방법밖엔 없다. 흔히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막상 무엇이 마음을 비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즉, 현실적 기대치를 갖는다는 것과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진솔함이나 담백함의 가치에 눈을 돌릴 수 있다. p.80
9. “운다고 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라.” 「길가메시」 中 p.87
10. 그러니 이 세상에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겁먹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된다.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나쁜 경험은 나쁜 경험대로 나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담백한 삶의 기술이다. p.104
11. 당위성의 횡포가 스스로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나 배우자, 친구, 심지어는 회사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타인에게 자신의 잣대를 적용하면서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 역시 당위성의 횡포다.
우리가 당위성의 횡포에 휘둘리는 일차적인 이유는 불필요한 아집과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역시 일종의 자해에 해당한다. p.117
12. 어떤 의미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에는 열등감과 자만심의 공존이 원인인 경우가 꽤 많다. 모순된 감정이지만,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만심보다는 열등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 신뢰가 낮다.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은 사람들도 열등감으로 힘들어 한다. 자신에게 부과하는 기대치가 너무 높은 탓이다. p.146
13. 차라리 손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손실 혐오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절반은 해결된다. 따라서 손실을 인정해야 할 때는 과감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앞으로의 삶을 좀 더 가볍고 담백하게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담백한 삶을 진정 내 것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p.159'비소설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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