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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해자의 얼굴> -이청준-
    소설/국내 2023. 12. 5. 11:10

     

     

    1. 언제나 망설이기만 할 뿐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 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자기 실수만이 아닌 소녀의 사건을 자기 것으로 고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양심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p.69(‘병신과 머저리’)

    2. 그는 글을 쓰게 된 애초의 동기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위로와 구제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또 한술 더 떠 그것을 다시 복수심 때문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복수심이라는 개인적인 동기와 관련하여 바깥 세계에 대한 작가의 책임은 서로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런 관계 안에서 작가의 책임이라는 걸 찾아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이 지상 과제가 되어 있는 문학에서야말로 정직하지 못한 것처럼 부도덕한 악덕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p.230(‘지배와 해방’)

     

    3. 그의 현재는 과거의 재생으로 연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p.376(‘시간의 문’)

    4. “사람의 소리를 듣는 걸 허물하려는 게 아니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그 시간과 함께 죽음으로 지나가버리기 쉽다는 것뿐이지. 그러니 그 순간의 소리에만 너무들 깊이 매달리지 말고 좀더 먼 시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라구 말이오.” p.391(‘시간의 문’)

    5. 그런데 한동안 세월이 흐르다 보니, 처음에 피해자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간에 피해자로서의 과도한 자위권과 반격권을 누림으로 하여 어느덧 새 가해자의 딱지를 얻게 되고, 이들 앞에 가해자로 억압을 받아온 사람들은 그간의 수난과 자기 회복의 갈망 속에 목소리가 서서히 드높아가면서 새로운 수난자로서의 요구를 내세우고 나서는 형편이었다. 수난자 의식은 그런 식으로 일정한 시간대를 거치면서 항상 새 가해자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좇게 되고 그 수난자와 가해자의 자리를 번갈아가면서 복수와 보상, 억압과 수난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더란 말이다. 하지만 가해자 의식은 다른 가해자를 용납하려지도 않으려니와 더욱이 새로운 수난자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자가 자기 속죄 의식을 덕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같은 가해자 의식으로 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억압과 수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화해와 이해를 지향하고 만남의 문이 열리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세월의 힘을 빌려 가해자와 수난자의 자리가 바뀌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너나없이 늘 가해 당시의 자기 자리에 서서 그때의 제 허물을 생각하고 그 빚을 갚으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pp.527-528(‘가해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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