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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안용태-비소설/국내 2023. 12. 7. 10:54
1. <아나비소스의 쿠로스>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묘한 운동성이 눈에 띈다. 양발이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형태이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무려 2,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 조각상이 보여 주는 운동성의 중심에는 변화를 중시하는 철학이 놓여 있다. 기원전 500년경에 활동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사물은 운동과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우리는 결코 같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표현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은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었고, 그의 생각은 당대 예술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다. p.74
2. 소피스트들이 내세운 상대주의 철학은 모든 인간을 중요시하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모든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판단은 완전한 정당성을 가진다. 그리고 타인은 이를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소피스트의 입장에서 완전한 인간에 대한 생각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세 명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각자의 생각은 모두가 중요하고 나름의 의미가 있다. p.87
3. 아폴론의 태양은 초월적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깨닫고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안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자 풍요의 신이며 황홀경의 신이다. 아폴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신으로 이성에 의해 억눌려 있는 감정적인 충동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폴론적 형식의 아래에서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옹호하며, 아폴론적 금욕과 디오니소스적 방종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한다. p.121
4. 아름다움이란 그냥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칸트는 ‘취미판단’이라고 부른다. 취미판단이란 주관적인 쾌와 불쾌에 대한 판단을 의미한다. (...) 칸트 이전의 과거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그리스인에게 아름다움이란 조화와 비례이다. 그것을 갖춘 조각상이 최고로 아름답다. 이집트인에게 아름다움이란 완전성이다. 따라서 정면성의 원리를 갖춘 것이 아름답다. 중세인에게 아름다움이란 신의 영광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각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개념과 형식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이미 정해진 아름다움의 기준에 딱 맞아떨어지는 예술품을 창작하였다. 무엇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개념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미는 객관적 속성이 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완벽한 황금비율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밀로의 비너스>는 황금비율을 고스란히 따라서 제작된다. 당시의 조각가에게는 자유롭게 조각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무엇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결론이 내려져 있기에 그 방식대로 만들면 그뿐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좋다’, ‘싫다’는 식의 말을 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아름답다고 결론 내려진 조각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냥 아름답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칸트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가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객관적 대상을 먼저 인식한 이후 그 다음에 주관적으로 ‘좋다’, ‘싫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린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취미판단의 의미다. pp.27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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