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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소설/국내 2023. 12. 19. 12:21
1.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눈앞에서 활짝 갈라지며 자, 이제 넌 앞으로만 걸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가슴 한편은 조여들며 불안한데, 머리 위로 계속 얼음물이 끼얹어지는 것처럼 정신이 또렷했어. 이런 느낌을 자유라고 부르는 건가, 생각했던 기억이 나. pp.79-80
2. 막 내려앉은 순간 눈송이는 차갑지 않았다. 거의 살갗에 닿지도 않았다. 결정의 세부가 흐릿해지며 얼음이 되었을 때에야 미세한 압력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얼음의 부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흰빛이 스러지며 물이 되어 살갗에 맺혔다. 마치 내 피부가 그 흰 빛을 빨아들여 물의 입자만 남겨놓은 것처럼. pp.185-186
3.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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