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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비소설/국외 2023. 12. 21. 13:29

     

     

    1.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들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17

     

    2. 내가 결혼생활에서 배운 인생의 비결은 이런 것이다. 아직 모르는 분은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여성은 화를 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으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화내고 싶을 때 제대로 화를 내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 p.79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방황하고 있다. 내 자신이 몹시 방황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있는 힘껏 돌벽을 걷어차기도 한다. 말하자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걷어차 버린 후에야 그래 봐야 발만 아플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백스물다섯 번째쯤 해서. pp.168-169

    4.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p.186

     

    5.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소설이 10만 부 팔리고 있을 때는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받으며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상실의 시대》가 백 몇 십만 부나 팔리고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때가 내게는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몇 가지 안 좋은 일, 재미없는 일도 있고 해서 마음이 상당히 냉랭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결국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도 못 될뿐더러 그런 그릇도 되지 못했다. pp.156-157

     

    6.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다.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거기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대개의 경우는 참을 수가 있다. 반대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대를 신뢰할 수 없으면 필요 이상으로 짜증이 나고 불안해진다. p.365

     

    7. 여러가지 의견과 감상들이 작은 먼지처럼 공중을 떠다니며 파들파들 떨고 있다. p.368

    8. 글을 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다. 처음에 가졌던 자기의 사고방식에서 무언가를 삭제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삽입하고 복사하고 이동하여 새롭게 저장할 수가 있다. 이런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나라는 인간의 사고나 혹은 존재 그 자체가 얼마나 일시적이고 과도적인 것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책 자체도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불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불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불완전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과도적이고 일시적이라고 한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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