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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호> -윤가은-
    비소설/국내 2023. 12. 26. 15:14

     

     

    1. 어른이 되고 특히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어쩐지 점점 더 겁내고 움츠러드는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용감한 사람들의 다양한 말실수 일화를 더 자주 떠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도 다시 그런 마음들이 피어나면 좋겠다. 잘 몰라도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마음. 틀리면 다시 배우고 익히려는 단단한 마음. 실수를 실험으로, 실패를 실현으로 바꾸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p.32

     

    2. 그랬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신나게 웃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애초에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그렇듯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그랬어야 마땅한 소중한 생일날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좋은 기분을 다른 누군가가 선사해 주기만을 기다린 걸까. 내가 언제 진짜로 웃을 수 있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p.43

    3. 정말이지 노래방은 혼자 가야 제맛이었다. 우선 좋아하는 노래는 수십 번이고 다시 부르고, 질리는 노래는 언제든 눈치 안 보고 꺼버릴 수 있었다. 또 듣고 싶지 않은 노래는 감내하며 들을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다. 괴로운 추억이 담겨 있거나 끔찍한 창법으로 구현되는 노래를(물론 본인 목소리는 제외) 우정의 이름으로 끝까지 견디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자 차마 선택하지 못했던 노래들을 모두 부를 수 있어 정말 기뻤다. (...) 그렇게 노래방은 내게 순도 100퍼센트의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pp.70-71

     

    4. 나는 혹시 내게도 의견을 물어볼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이따금 가만히 미소 짓거나 고개를 살짝씩 끄덕였다. ‘나도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듣고 있으니, 걱정 말고 편히 대화를 이어가시라는 무언의 제스처였다. p.169

    5. 어쩌면 나는 진짜 행복의 모습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길을 끝까지 걸어서 도착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착각했던 것도 같다. 오랜 시간 걸으며 깨달은 유일한 것이 있다면, 행복은 도착지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진실이었다. 목표한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때론 목표한 곳 없이 떠돌아다녀도 나는 단지 걸을 수 있어 행복했으니까.

     돌아보면 내 길을 찾아 부단히 걸어오는 동안, 만족할만한 성취는 이루지 못했어도 행복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피아노 건반을 지그시 눌러 원하는 화음이 흘러나왔을 때, 붓 끝에 묻은 물감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종이에 번져나갔을 때, 춤을 추고 발차기를 하며 흘린 뜨거운 땀으로 온몸이 노곤해졌을 때, 그 모든 순간들에 나는 아주 다양한 맛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pp.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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