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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E-Book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소설/국외 2023. 10. 25. 10:47

     

    1. 다시 말해, 우리가 붙인 불 때문에 우린 성장할 수 있었고, 서로를 만나기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 불씨는 꺼져버렸다. 원래 다 이렇게 되는 건가? 우리가 함께 있던 시간이 너무 적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우리가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어서 그런가?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존재가 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린 예전처럼 웃지 않는다. 예전처럼 논쟁하는 일조차 없다. 어쩌면 이 몇 년간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서 급기야 우리가 누군지 알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잠시 동안은 10년 전 런던에 왔었을 때의 모습처럼, 서로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며 보토벨로 마켓에 있는 새집을 꾸밀 장식을 고르던 커플, 토요일 오후면 리젠트 파크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서 유토피아적 관념에 대해 토론하고 시내에 있는 정통 태국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애써 해독하면서 깔깔대던 커플, 두 몸으로 하나를 이루어 사랑을 나누다가 결국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딸이면 멜리사로 해야 한다 아니다 파멜라가 좋다, 아들이면 스튜어트로 해야 한다 아니면 마누엘로 해야 한다. 말싸움을 벌이던 그 커플 그대로인 척 안전하게 연기하며 애써 몸을 사리고 있었던 거다.
     
    2. “그래, 그건 그렇다 쳐. 하지만 세상은 절대로 그렇게 굴러가지 않아. 인생은 장미처럼 향긋하고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만 한 게 아니라고. 장미는 시들고 초콜릿은 상해. 결국 우리네 인생이란 건 칼로리 걱정 때문에 뻥튀기나 씹으면서 팔라테스 강좌에 가는 거라고. 남편이란 작자가 사무실에서 새로 들어온 여자애한테 홀딱 빠져 있는 동안 말이야. 출산 휴가 갔다오면 승진은 내 옆에 앉은 머저리나 하는 게 인생이라고...
     
    3. “너희는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 그건 분명해. 고도로 복잡한 계산과 계획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희 중 대부분은 그걸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끝도 없이 반복하고 있으니까. 이미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려 들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안 일어날까 생각해대는 게 아주 볼썽사납거든.”
     
    4. “너희는 상상 속의 유령에 겁을 먹고 있지. 꾸며낸 환상에 오싹해하고, 이야기와 망상과 거짓말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서로를 속이고 있어. 머릿속에 그렇게 생각을 차고 넘치도록 담아서 빙빙 돌리고 있으면 결국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고, 그 생각들은 네 감옥이 될 뿐이야.”
     
    5.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진실과 해결책, 심지어 인생의 의미까지도 찾게 될 거라 믿지. 개념의 감옥에 갇힌 채로.”
     
    6. “들어봐, 사라. 내가 보기에 넌 아직 호아킨을 만날 만한 상태가 아니야. 네가... 그를 죽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할지도 몰라. 지금 네 자신을 챙겨야 해. 사실 더 좋은 건 널 챙겨줄 사람을 찾는 거야. 여기서 나가자. 다른 안식처를 찾아보자고. 너를 사랑하고 지지해 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고양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독립적이 되지만 너희 인간들은 어딘가 개와 비슷한 면이 있지. 너희도 개처럼 무리가 필요해.
     
    7. 눈에 눈물이 차올라서 도시의 불빛이 완전히 흐려졌다. 그러자 시빌이 옆에서 나를 안아주는 게 보였다. 꼬리를 내 등에 둥글게 감고 앞발은 내 무릎에 얹고서 머리를 내 배에 기댄 모습으로. 고양이의 숨결과 그 작은 몸의 열기로 몸이 조금씩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한 손을 난간에서 떼어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과 작은 머리, 따스한 부분을 쓰다듬었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주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고양이. 나와 여기까지, 내 세상의 끝까지 함께해준 고양이. 지금 여기에, 고양이만이 어떤지 아는 장소와 시간에 그냥 나와 함께 있어준 고양이.
    강물은 발 아래로 흘러갔고, 나는 시빌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난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얘기했다. ‘내 온기를 네게 줄게. 내 사랑을 네게 줄게.’ 강물은 발 아래로 시간처럼 흘러갔다. 자기를 쓰다듬게 허락해준, 내 손에 자기 몸을 너그러이 내어준 이 고양이 옆에 앉아서 나는 깨달았다. 이런 일이 전부 일어나도 세상이 돌아가고 물이 흘러가고 바람은 불어서 내 눈물을 말려주는구나. 모든 것은 태어나서 변하고 스러져간다. 호아킨과 나 사이도, 내 인생도, 온갖 소음과 빛으로 가득한 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 온기를 네게 줄게. 내 사랑을 네게 줄게.’ 난 고양이에게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언어를 들었다.
     
    8. 속인 상대가 있다면 그건 바로 너 자신이지. 너야말로 네 인생이 끔찍하다고, 이제 끝났다고, 그래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게 바로 너를 둘러싼 돌벽이고, 그것도 네가 직접 쌓은 거야.
     
    9. ‘인생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말이야. 먹을 땐 먹는 데 집중하고, 걸을 땐 걷는 데 집중해.’
     
    10. “너 왜 나한테 그런 끔찍한 말을 하는 거야?”
    “나야말로 왜 네가 자신에게 끔찍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
    “너는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너한테 없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잖아. 네가 잃어버린 것들과 앞으로 가질 수 없을 것들, 좋아하지 않는 것들 등등...”
     
    11. ‘어떤 일이 벌어지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넌 자유로운 거야.’
     
    12. 그 편지를 읽자 앞집 여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무서운 생각만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생각했던 그녀의 모습은 내 말도 안 되는 편견의 사물이었다. 시빌 말이 맞아. 세상의 참 모습은 내 방식대로 바라본 세상과는 다른 거였어.
    그러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바나 뿐만 아니라 아직 모르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 나는 절대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가까운 관계자만 아주 오랫동안 멀리하고 지냈던 이에게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13. 하지만 시빌이라면 ‘떨어지기 전에는 미리 지레 겁먹고 떨어지지 마’라고 말했을 거야.
    “떨어지기 전엔 미리 지레 겁먹고 떨어지지 말자. 떨어지기 전에는...‘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14. 호아킨에 대한 나의 원한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용서한 걸까? 호아킨의 배신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겁쟁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하지만 난 아마도 그 모든 증오심을 품고 가는데 지쳐버린 건지도 모른다. 결국 그러면 나만 힘들 뿐이니까. 어쩌면 나는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호아킨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위인이라면, 그 불쌍한 악마 같은 놈은 무지와 공포라는 두꺼운 벽 속에 갇힌 채 이 우주의 미아가 된 게 틀림없다. 그도 아니라면, 호아킨은 자기 갈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정도로 내 가슴이 성장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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