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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쿠라노소시> -세이쇼나곤-
    비소설/국외 2023. 11. 6. 10:35

     

     

     

    1. 각양각색으로 활짝 핀 가을 풀꽃들이 흔적도 없이 다 져버린 후에, 겨울이 끝날 때까지 머리가 새하얗고 푸석푸석해진 것도 모르고 옛날 잘나가던 때를 생각하며 바람에 흔들흔들 서있는 모양은 마치 인간의 일생을 보는 듯하다. 억새가 인간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특별히 감개를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p.132
     
    2. 9월경 밤새 내린 비가 아침에 그치고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었을 때, 뜰에 핀 화초에 이슬이 굴러 떨어질 듯 소담스럽게 매달린 것은 매우 운치 있다. 그리고 사립 울타리나 초라한 지붕 처마의 거미줄에 빗방울이 떨어져 맺힌 것도 마치 진주가 맺힌 듯이 맑고 예쁘다. p.267
     
    3. 안뜰에 풀이 무성하여 내가 ‘왜 이리 보기만 하시오. 베어버리면 되지 않소’라고 하자, ‘일부러 두고 이슬이 맺히도록 하라시는 중궁님 분부시오’라고 사이쇼노키미가 대답해, 참으로 풍류를 즐길 줄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소. p.292
     
    4. 8월이나 9월경에 비 섞여 부는 바람은 왠지 가슴에 스민다. 바람이 불어 빗발이 옆으로 내리치면 마음이 스산해져서, 한여름 내내 쓰던 면옷을 생견 홑옷에 겹쳐 입으면 색다른 분위기가 난다. 이 생견 홑옷이 너무 더워서 벗어 던지고 싶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날씨가 선선해졌나 신기하기만 하다. p.376
     
    5. 5월에 산골 마을로 외출하는 것은 참 좋다. 풀잎도 물도 푸름이 가득한 곳을 풀 헤치며 건너가면, 아래쪽은 그리 깊지 않지만 같이 간 사람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이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이 볼만하다. p.404
     
    6. 해가 산 뒤로 넘어간 후 여명으로 산등성이가 불그레하고, 그 위로 연노란빛 구름이 길게 떠 있는 광경은 정말이지 멋있다. p.439
     
    7. 달이 매우 밝을 때 얇은 구름이 달을 덮으며 지나가는 것도 근사하다. p.442
     
    8. 어전에서 뇨보들끼리 얘기하거나 중궁께서 말을 걸어오실 때, “세상일이 너무도 화가 나고 기분이 울적해서 한시도 이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아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을 때, 깨끗한 보통 종이와 좋은 붓, 흰 색지, 미치노쿠 지방 종이가 손에 들어오면 그런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좀 더 이 세상에 살고 싶어집니다. 또 푸른색으로 꼼꼼하게 짜고, 테두리는 검고 흰 무늬가 선명한 고려식 다다미를 펼쳐 보았을 때도 이 세상을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하루 목숨이 줄어드는 것조차 아까워질 정도입니다”고 아뢰니, “참으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다면 마음이 울적할 때 쳐다본다는 오바스테산 산은 대체 누가 본단 말이냐”하며 웃으신다. 옆에 있던 뇨보들도 “정말 간단해서 좋소이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진짜 머리 아픈 일이 있어서 시골집으로 퇴궐했는데, 중궁께서 종이 20장을 하사하셨다. 편지에는 “어서 입궐하게나”라 쓰여 있고, “이 종이는 이전에 들으신 얘기가 있어 하사하신 것이다. 그다지 질 좋은 것이 아니라 수명경은 못 쓰겠지만”이라는 글이 달려 있다. 정작 말한 나 자신도 까맣게 잊어버린 일을 중궁께서 지금까지 기억하시다니 감탄스러울 뿐이다.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 몰라서, “아뢰옵기도 황공한 신령(종이)님의 은덕을 입어 학의 나이만큼 오래 장생할 수 있으리”(...) 라고 써서 드렸다. pp.469-470
     
    9. 장작을 패는 일은 바로 어제로 다 끝났으니 이제 도낏자루는 여기서 썩는구나.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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