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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비소설/국외 2023. 11. 7. 11:29
1. “싫어하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으니까 싫어하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의 이원론으로 생각하면 융통성 없는 인간관에 빠지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성사시키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 보자. p.29
2.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배려나 친절은 보시이다. 그렇다면 보답을 바라지 않는 행위이니까,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베풀었으면 베푼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p.40
3. 긴장을 해소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방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지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마음이 부드럽게 완화되면서 자연체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기가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완화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아무리 긴장을 해도 예상한 대로 일이 발생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 p.51
4. 이해와 동의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기 쉽다. 누군가는 “내 말을 이해한다면서 왜 당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거죠?”라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 나는 동의와는 별개로,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뭐, 그런 사고방식도 있지”라고 말한다. p.61
5. 나 자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연장자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설사 아랫사람이 “이거, 알고 계십니까?”하고 잘난 척을 해도 모르면 솔직하게 “모르는데요”하고 대답한다. “네? 이걸 모르세요?”라고 놀리듯 말해도 “그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하고 답변한다. 그래도 “하지만 유명한 것인데요”하고 추궁을 해오면 “제가 모르는 것이니까 아주 유명한 것 같지는 않군요”하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p.70
6. 여기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고유의 자아(실체)라고 불리는 것은 없다는 진리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읽고 있는 이 책도 고유의 실체는 아니다. 책장에 넣어두면 컬렉션이 되고, 쌓아두면 받침대가 된다. 한 페이지씩 찢어서 불에 태우면 불씨가 되기도 한다. 염소에게는 먹이가 되고, 버리면 쓰레기가 된다. 던지면 무기가 된다. (...)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이 책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책에는 책 이외의 용도가 얼마든지 존재하든, 자신을 ‘이렇다’고 하나의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가능성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pp.130-131
7. 갖가지 실패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일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실수에 하나하나 눈살을 찌푸리고 꾸짖지 않는 너그러움을 갖추게 됨을 의미하기에 결과적으로 나의 마음이 평온해진다. p.143
8.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왜 그런 걸 바라는 것일까?’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 이것은 분노뿐 아니라 슬픔, 고통 등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 효과가 있다. 납득할 수 있는 부분에까지 ‘왜?’를 반복해보자. (...)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p.151
9. 새로움을 깨닫는 감성만 있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이걸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지?’하는 설렘과 흥분을 맛볼 수 있다. p.155
10. “주저앉았다면, 이는 점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
“상대가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 p.165
11. 불교에서 번뇌에 대해 설명할 때 질투는 ‘질(嫉)’로 표현되는데, 이는 여섯 가지 근본적인 번뇌에서 파생되는 스무 가지 번뇌의 하나에 해당한다.
여섯 가지 근본적인 번뇌는 탐(貪. 생존에 대한 집착), 진(瞋, 화를 내는 것), 치(痴, 사리에 어두운 것), 만(慢, 사람에 대한 우월의식), 의(疑,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는 것), 악견(惡見, 그릇된 견해)을 말한다.
‘질’은 이른바 시기하는 것으로, 타인의 지위, 성공, 재산, 기술, 지식 등을 시샘하여 방해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여기에서도 키워드는 ‘비교’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타인의 성공 등을 방해하여 ‘자신보다’ 아래에 놓고 싶어 한다. 이렇게 ‘비고의 악순환’이라는 특성을 가진 것이 ‘질’이다. pp.237-238
12. “아내가 외출해서 오늘 세탁물 정리는 내가 담당했다. 여름 햇살에 바짝 마른 세탁물을 걷으면서 보니 빨래집게 여섯 개의 손잡이가 한쪽이 없었다. 직사광선을 받기 때문에 쉽게 고장이 나는 것이다. 손잡이 한쪽이 없으면 집게를 제대로 잡기 힘들다. 아침에 빨랫줄에 옷을 물릴 때 아내는 꽤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여섯 개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아내는 틀림없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하하하! 아니, 이렇게 웃어서는 안 된다. 아내는 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엄청난 일들을 묵묵히 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빨래집게 교체는 아내에게서 받은 은혜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날 오후에 생긴 일이다.” p.326
13. 그러니까 좋은 일이 있건 나쁜 일이 있건 “이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여주자. p.356'비소설 > 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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