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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인상주의 편> -진중권-
    비소설/국내 2023. 11. 10. 13:16

     

     

    1. 고전미술에는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p.17
     
    2. 고전미술의 목표는 그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연주의’가 그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머물렀다면, ‘고전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 사물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p.23
     
    3.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 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라는 것이다. p.28
     
    4. 18세기 초반 예술의 주류로 행세하던 것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이었다. 전자는 차가운 이성을, 후자는 열정과 상상력을 강조하지만, 두 흐름 모두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신고전주의는 신화·성서·역사라는 전통적 제재(‘이스토리아’)를 고수한 반면, 낭만주의는 상상을 자극하는 기이하거나 이국적인 사건에 집착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흐름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그렇지만 사실주의자들은 달랐다. 이들의 눈은 과거의 영광이나 이국적 풍경이 아닌 지금 여기의 비루한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 p.37
     
    5. 하지만 사실주의가 그저 현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정교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사실주의 예술은 현실의 가시적 외면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변형적·설명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통찰을 제공하려 한다. p.43
     
    6. 거칠게 말하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사실주의는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p.69
     
    7. 나자렛파와 라파엘전파 사이에는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나자렛파가 고전적 이상미에 집착했다면, 라파엘전파는 그 어떤 예술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묘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라파엘전파는 신에 대한 종교적 경건함과사진술을 통해 도입된 과학적 지각의 방식을 하나로 결합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중세적 태도에 현대적 지각을 모순적으로 결합시킨 것이 바로 나자렛파와 구별되는 라파엘전파의 본질적 특징이다. 두 흐름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적 경향을 보여준다 하나, 고전적 이상미에 사로잡힌 나자렛파와 달리 라파엘전파의 작품에는 거의 사진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묘사가 나타난다. p.78
     
    8. 에두아르 마네는 흔히 인상주의자로 소개되곤 하나, 정작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을 ‘사실주의자’로 여겼다. (...) 마네는 본격적인 인상주의자라기보다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 봐야 한다. p.99
     
    9. 고전주의 회화가 색채를 형태에 종속시켰다면, 인상주의 회화는 색채의 요란함을 위해 윤곽의 명확함을 희생시킨다. 형태나 윤곽은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 만질 수도 있으나, 색채는 오직 볼 수만 있을 뿐 더듬어 만질 수는 없다. 회화를 촉각적 영역에서 시각적 영역으로 옮겨놓은 것, 이것이 인상주의가 일으킨 ‘지각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p.139
     
    10. 드가 역시 사진을 즐겨 활용했다. (...) 하지만 드가에게 사진은 그저 사물의 형태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흘러가는 순간을 영원히 응고시키는 능력이었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라는 《파우스트》의 대사처럼 드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게 응고한 아름다운 순간을 본다. 발터 베냐민은 사진술이 현대인의 지각 방식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육안에서 렌즈의 지각으로. 드가는 그렇게 ‘카메라’의 등장으로 우리 눈에 일어난 지각의 변화를 회화로 구현한 최초의 작가였다. p.177
     
    11. 분할주의는 쇠라의 용어이고, 점묘법은 폴 시냐크의 용어다. 시냐크의 ‘점묘법’이 화면을 색점으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쇠라의 ‘분할주의’는 그 뜻이 더 넓어 색의 분할만이 아니라 화면의 체계적 구성을 위한 영역의 분할까지 포괄한다. 훗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쇠라·시냐크·피사로 등 화면에 분할주의를 도입한 작가들의 화풍을 인상주의와 구별하여 따로 ‘신인상주의’라 부르게 된다. p.202
     
    12. 1) 캔버스에 색을 칠하면 그 색은 붓이 닿은 부분만 물들일 뿐 아니라 그 색의 보색으로 주위 공간도 물들인다.
     2) 한 색깔 옆에 흰색을 배치하면 그 색의 색조가 강해진다. 그것은 마치 그 색으로부터 강도를 약화시키는 흰빛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3) 한 색깔 옆에 검정을 배치하면 그 색의 색조가 떨어진다. 때로는 그것이 색조를 빈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4) 한 색깔 옆에 회색을 배치하면 그 색은 더 빛이 난다. 그 색은 이 회색을 병치된 색의 보색으로 물들인다. -쇠라의 노트(슈브뢸 인용)- p.204
     
    13. 실제로 프라이가 1910년에 개최한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자들’ 전시회에는 고흐·고갱·세잔 외에 신인상주의자인 쇠라, 야수주의자인 마티스·드랭·블라맹크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후기 인상주의’라는 말은 대체로 고흐·고갱·세잔으로 대표되는 경향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다. p.223
     
    14. 이들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는 상징주의다. 인상주의에서 제재란 그림을 그리는 ‘구실’에 불과했지만, 고갱과 동료들은 그림이 항상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주의 이후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려왔지만, 고갱과 동료들은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넘어 비가시적 관념의 표현을 추구했다. (...) 전통적 성화와 달리 <황색의 그리스도>와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이 두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켜 뭔가 알 수 없는 의미를 전달한다. (...) 이 두 경향은 곧 하나로 합쳐져 ‘종합주의’라는 흐름으로 발전한다. 고갱은 자신을 ‘종합주의자’라 불렀다고 한다. 종합주의는 흔히 대상의 외관에 대한 묘사, 1) 자연 형태의 외관의 묘사, 2) 제재를 통한 의미의 표현, 3) 선·색·형 자체의 자율성을 하나로 합치는 흐름으로 얘기된다. 첫째는 구상 회화 일반의 특성이고, 종합주의를 인상주의와 구별시켜주는 것은 역시 둘째와 셋째 요소다. 둘째는 제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주의의 경향, 셋째는 형과 색을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화면 위에서 자율적 조형의 요소로 다루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자포니슴, 즉 일본 목판화의 대범한 색채 효과에 자극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pp.241-242
     
    15. '자연과의 접촉‘에서 회화의 영감을 얻는 것은 인상주의의 성과였다. 결국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성과를 보존하되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전주의로 복귀하는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p.282
     
    16. 세잔은 마지막 고전주의자이자 최초의 현대주의자였다. p.301
     
    17.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은 사물을 부분까지 정확히 묘사하는 고도의 자연주의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이 관찰의 정확성은 당시에 급속히 떠오르고 있던 과학기술의 영향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라파엘전파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얻게 된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자신들이 동경하는 허구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결국 자연주의라는 과학적 기법이 전통적 회화가 지향하던 허구의 세계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도구로 사용된 셈이다.
     이 복고적 경향은 라파엘전파에서 ‘미술과 공예 운동’으로 전해진다. p.348
     
    18. 사실주의자들에게 회화란 이미지를 통해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었다. 반면에 인상주의자들은 회화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p.350
     
    19.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20세기의 취향은 결국 산업혁명 이후 진행되어온 노동의 기계화가 예술의 영역에까지 관철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기계 미학을 주창했다. 과거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자연’이었으나, 그 자리를 이제 ‘기계’가 차지하게 된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 새로운 미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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