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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튼, 외국어> -조지영-
    비소설/국내 2023. 11. 10. 13:22

     

     

     

    1. 나는 처음처럼 혼자였지만, 그전의 혼자와는 조금 다른 혼자가 되었다. p.62
     
    2. 일상생활의 작고 미세한 장면들과 틈새들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그리는 에세이스트 하루키는, 단정하고 깔끔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맥주 한 잔 청하고 싶은 사려 깊은 어른 같다. p.118
     
    3. 동일본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된 사람들이 보여준 절제와 인내는 정말 놀라웠다. 유수의 매체에서 “인류 정신의 진화”라고 극찬을 했지만, 극도의 불안 상황 속에서도 새치기 한 번 없고, 버려진 쓰레기 한 조각이 없고, 심지어 우는 아이의 칭얼거림조차 없는 비현실적인 정경에 나는 어쩐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불가항력의 파괴와 절멸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것 같은, 오래전에 예정된 수순을 받아들이는 과정처럼 보이는 처연한 감정들이 너무 슬펐다. 압도적인 재앙에 극도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울컥, 슬픔이 밀려왔다.
     언제고 땅바닥이 흔들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삼킬지도 모른다는 학습을 평생에 걸쳐 반복한다는 것은, 일본이라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어딘지 늘 의심이 많고 겁도 많고 조심성이 많은 특유의 기질 밑바탕에는, 수백 년 누적된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체념이라는 정당화, 순응이라는 편리함, 대의 혹은 대세라는 이데올로기에 유독 약한 일본 사람들이 쉽게 투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오래된 확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pp.121-122
     
    4. 아무튼, 계속 쓰고, 계속 뛰며, 계속 싸워나가는 그 ‘계속해보겠습니다’ 정신을 사랑한다. 체념하지 말고, 순응하지 말고, 투항하지 말고, 다른 그 어떤 존재에게라도 나를 방치하지 말라는, 어찌 보면 잔소리 같은 메시지가 아직은 질리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 적’ 하루키는 ‘그래도’ 하루키가 된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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