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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소설/국외 2023. 10. 20. 11:19
1. 계단을 다 오르면 둥그런 평지가 나오고 왼쪽으로는 급한 오르막이다. 그 평지의 소나무 아래에 엘리너의 적갈색 뷰익이 주차되어 있었다. 계단식 포도밭과 올리브 밭을 배경으로 타이어 측면이 휜 커다란 자동차가 놓은 풍경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엘리너에게 그 차는 낯선 도시의 자국 영사관과도 같은 존재였다. 엘리너는 강도를 만난 여행객처럼 긴급히 차로 갔다. p.17
2. 그들은 누군가 빈자리를 채우려고 급히 부를 경우에 대비하거나 주말을 보낼 준비를 하고 할 일 없이 빈들거리는 족속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것도 아닌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추억이었는데, 사실은 그것마저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엘리너는 데이비드를 만났을 때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데이비드에게서 이제는 이해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변화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p.19
3. 그러나 생김새보다 더 자극적이었던 건 엘리너의 들뜬 모습이었다. 중요한 무언가에 자기를 바치기를 갈구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찾지 못해서 조용히 안달하는 여자의 모습이랄까. p.22
4. “제멋대로 줄을 쓰게 내버려 두면 그걸로 목을 매달 거야.” (너무 많은 자유를 주면 어리석은 행동으로 신세를 망친다). p.38
5. 실수라도 자기가 저지르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훌륭한 취향보다 낫다는 데이비드 멜로즈의 확신에 빅터는 늘 감탄했다. 빅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늘 갈팡질팡했다. p.47
6. 더 젊은 여자들에 비해 살의 탄력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그들과 지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은 그를 괴롭혔다. 즙이 흥건한 요리 냄새가 떠돌다가 감방의 잊힌 죄수에게 이르듯이. 어째서 욕망의 중심은 언제나 떠나온 곳에 있을까? p.91
7. 그러나 그런 자각은 소용이 없었다. 실패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실패가 축소되지는 않으니까. 그 대신 자기혐오는 자각 전 새까맣게 몰랐던 때보다 좀 더 복잡해지고, 좀 더 명료해졌다. p.100
8. 전자는 평범한 예술적 재능과 절대 권력이 결합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 주고, 후자는 겁이 많던 사람이 기회를 잡으면 거의 필연적으로 겁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걸 보여 주지. p.145
9. “사람들은 자기들이 곧 죽을 거라는 생각 속에 평생을 보낸다는 걸 알았어. 그들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건 언젠간 자기들 생각이 맞을 거란 거지. 그들과 이 정신적 고문 사이에 있는 건 의사의 권위뿐이지. 그게 유일하게 작용하는 치유의 약속이야.”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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