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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사적인 시간> -다나베 세이코-
    소설/국외 2023. 10. 20. 11:36

     

    1. 밝은 곳에서 보니 고로는 살이 올라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리고 평범하고, 미미와 마찬가지로 거무스름해진 것 같고, 어디가 어떻다고 할 순 없지만 비누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생활의 찌든 때가 느껴졌다. 그 때문에 딱히 고로가 비참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고 있는 이쪽이 안타깝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pp.49-50

     

    2. 나는 끈적끈적한 친절은 달갑지 않고 가만 내버려 두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나는 쓸데없는 질투나 참견을 너무 자주 친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 풍습이 싫어질 때가 있다. p.81

     

    3.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고의 그런 버릇을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옛날만큼 일일이 귀에 거슬려하지 않는 것은, 내가 고의 버릇에 익숙해졌다기 보다 어떻게든 그런 것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내 무의식의 보호본능 때문이 아닐까? p.83

     

    4. 지금 그 빈 곳에는 고가 들어와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빈방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들어오세요”란 느낌. 이런 걸 고에게 말하면 얼마나 화를 낼까? p.93

     

    5. 내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잊었기 때문이지만, 고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p.95

     

    6. 브리지트 바르도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조용히 혼자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행복은 혼자 살 때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여자 혹은 남자와 언제까지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고는 모르는 걸까? pp.161-162

     

    7. 누차 말하지만, 내 기가 약해서라기보다 너그러움 때문에 혹은 포기 때문에 항ㅅ아 내가 비위를 맞추고 고에게 계기를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자기가 화를 낸 거니까 자기가 기분을 풀면 되잖아! 라고 냉정해질 수는 없었다. p.165

     

    8. 하지만 역시 말할 수 없었다. 고가 짓궂은 장난을 치려할 때, 이쪽이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고 무심결에 ‘그만해!’라고 진심에서 외쳤을 때의, 한순간에 얼어붙은 침묵.

    아주 짧은 순간에 갑자기 변해버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깨지기 쉬움과 두려움. 3년 만에 진심이 드러나고 말았다.

    진심의 목소리는 ‘일단 말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게 되고, 그때부터 끝없이 술술 나오는 게 아닐까요?’ ‘분명, 한순간 한순간을 이어 맞추는 것에 지친 거겠죠?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하고 말한다. p.260

     

    9.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의 사적인 시간은 모두 고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나 자신의 존재조차 없어지고, 고의 사적인 생활의 일부분으로 나는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다, 라고. p.272

     

    10. 나는 술기운이 돌았다. 행복한 술기운은 아니다.

    이대로 고와 계속 갈 수도 있고, ‘죽일 테면 죽여라’하는 심정으로 고의 일족과 사이좋게 살아갈 재능도 나에게는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발하고 올게요’라고 집을 나가게 될 것이다.

    영원히, 대충대충, 계속 살아질까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순간도 올 것이다.

    “부부란 게 싫어.”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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