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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소설/국외 2023. 10. 23. 10:22
1. “그래도 북적거리던 시절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활기가 탱글탱글한 덩어리처럼 손에 만져질 듯 기운 넘치던 시절에. 밤길을 걸어만 다녀도 축제 같은 기분이었어. 관광지라서 참 좋았는데. 가을이 오면 여름철에 바빴던 동네 사람들이 좀 멍하고 축 늘어져서 휴식에 들어가는 느낌도 정말 좋았고. 그런 걸 보여 주고 싶었어.” p.56
2. 멀리 떠나가는 배가 콩알만 하게 보인다. 한 줄기 하얀선을 남기고. 마치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바다 위로 멀어지는 것을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금색으로 빛나고,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빛나고, 너무 아득해서 가물가물했다. p.76
3. 그 등이 내 꿈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오직 그 울퉁불퉁 억센 손을 잡을 때가 내 온 하루의 기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색이 바래 버리고 말았다. 그와 함께일 때, 고향은 최고로 빛났다. 해거름이면 늘 신사까지 천천히 걸어가 경내에서 빙수를 먹고, 또 키스를 하곤 했다. 이 동네에서 이 사람과 함께 이대로 어른이 되어 갈 수 있다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지만, 역시 한 번은 바깥 세계로 나가 보고 싶어 그렇게 했더니 모든 게 달라지고 말았다. p.88
4. 해결이란 정말 재미있다. ‘이제 틀렸네.’ 싶을 쯤에는 반드시 찾아온다. ‘반드시 어떻게든 될 거야.’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짜내다 보면 전혀 다른 곳에서 불쑥, 아주 어이없이 찾아오는 것인 듯하다. p.102
5. 가을이 깊어져 가는 바다는 쓸쓸하고, 나는 하지메가 찾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쓸쓸함은 절대 나쁜 쓸쓸함이 아니다. 마음 속의 잔잔한 물을 맑게 걸러 주는 듯한 쓸쓸함이다. 그리고 이 계절이 있기에 여름의 그 거친 힘에 휩쓸렸던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하게 감싸 주는 것의 미덕이 한결 도드라져, 나 역시 가을의 일부로 아름답게 섞여 든다. p.149
6. 모두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그만큼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별빛이 이어지듯 그것은 커다란 빛이 되어, 맞설 길이 없을 만큼 거대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 보이리라. p.151'소설 > 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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