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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과 지성> -김해완-
    비소설/국외 2023. 11. 16. 12:47

     

     

     

    1. 의미는 부여되는 게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p.4
     
    2. 오늘날 장사로 성공하려면 물건이 아니라 브랜드를 팔아야 한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아이폰을, 운동화가 아니라 나이키를, 커피가 아니라 스타벅스를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p.21
     
    3. 21세기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이 정말 ‘지옥’(Hell)은 아니다. 200개가 넘는 국가들 중에서 한국보다 더 안전하고 쾌적한 곳은 몇 군데 안 된다(그런 선진국들조차 당장 청년실업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헬조선이라는 개념이 망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한국이 실질적으로 가난하다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삶의 방식을 여러 가지로 탐색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질식시켰다는 것이다. 한국이 좇아 온 ‘근대적 삶’이란 대학-취업-결혼이라는 전선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지는 얄팍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절망감을 반영한 단어가 바로 헬조선이다. p.31
     
    4. 상품을 통한 품위는 일회용이기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끝난 환상은 일상의 너절함을 폭로한다. 품위에 대한 열망은 품위 없는 삶에 대한 경멸과 맞닿아 있다. p.37
     
    5. 하지만 빛이 멀리 있는 만큼 그림자는 뒤로 길게 늘어진다. p.49
     
    6. 착취의 사슬은 사방팔방으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 더 이상 ‘부자’의 착취에 맞서 싸우는 ‘빈자’가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잘잘못을 어떻게 따져야 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고정된 가해자도, 희생자도 없다. 개개인은 모두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글세’의 액수를 감당하기 위해서 모두들 싸우고 있을 뿐이다. p.71
     
    7. 역사를 통틀어 만인을 위한 ‘진보’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고,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순간부터 오늘날 인류는 홈-리스라는 공통운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500년 동안 우리는 방방곡곡 연결된 세계 속에서 차례차례 집을 잃어버렸고, 조상이 살던 땅에서 뿌리 뽑혔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내가 태어난 땅이 여러 세대가 삶을 지속할 만큼 풍요로운가이고, 둘째는 낯선 땅으로 옮겨 갔을 때 새로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중력이 있는가이다. 이 두 조건 중 하나라도 갖추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필사적으로 살고 있다. 언어를 배우고, 비자를 얻고, 노동을 팔고 있다. 인구 대비 유학생 비율이 전 세계 1위인 한국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 땅에서 한국인 핏줄로 태어났다고 해도 한국에서만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990 아파트 한인들의 모습에는 뉴욕이, 미국이, 세계가 담겨 있다. p.79
     
    8. 오늘날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다 함께 변하고 있다. 전 세계는 모두에게 타향이 되었다. 이것이 다문화의 진정한 의미다. p.98
     
    9. 그러나 이런 시대에 뿌리가 있는 게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유동한다면 나 역시 유동하리라. 문화를 정의하는 것은 권력이며, 문화에 정의되는 것은 내 일상, 내 정체성, 내 인간 관계도. 그러나 문화를 생산하는 것은 나와 타인을 동시에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내 문화마저 몇 년 만에 끊임없이 낯설게 변하고 마니, 결국 모두가 모두의 문화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學而時習) 수밖에 없다. 그 길의 와중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잡탕 문화가 탄생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속한 문화다. 이것이 편한 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말 많고 탈 많은 뉴욕 지하철을 내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처럼, 그리고 종국에는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이 과정 자체를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을 떠나 어디서 살게 되든 그곳은 타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나의 타향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이해하는 한, 나는 세계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전 세계’와 연결될 것이다. pp.112-113
     
    10. “우주의 98퍼센트는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p.150
     
    11. 필연과 우연은 우주의 운동이 만들어 내는 두 가지 리듬이다. 그렇지만 이 리듬을 가지고 실제로 시간을 통과하는 것은 개인의 힘이다. 이것이 자유의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p.202
     
    12. 인간은 외면과 내면을 통합시키며 살아야 한다. 추상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몸부터가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 이것이 신경의 존재론적 역할이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이 통합성을 해친다고 느낄 때, 내 힘으로는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없을 때 바로 무기력이 도래한다. 신경은 제 역할을 잃고, 살아 있다는 느낌은 옅어 진다. p.235
     
    13. 느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극을 긍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진실이다. 괴로운 느낌은 배제하고 행복한 느낌만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무기력이라는 고통이냐, 고통스러운 생기냐. 오, 신경의 역설이여! p.242
     
    14. 이 자존감은 애인이 나를 ‘책임져 준다고’ 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불안과 우울함에 대해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애인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싱글’이다. p.249
     
    15. 문제는 연애를 하느냐 안 하느냐,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 아이를 낳느냐 안 낳느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몸이 몸 본연의 자연스러움에서 동 떨어져서 사회 시스템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신체가 된다는 것. (...)
     골드만은 몸을 장악한 이 시스템을 ‘정부’라고 부른다. 근대 국가는 기본적으로 생명 장치를 따른다. 모든 국민이 평생 동안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기를 강요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명 정치가 가능하려면 인구부터 장악해야 한다. 인구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성행위를 조절해야 하고, 연애(성)라는 활동도 감시해야 한다. 따라서 연애는 ‘사회적 통념’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인위적인 몇 단계로 나뉜다. 첫 만남, 데이트, 결혼. 이 과정의 최종 단계는 ‘합법적’ 임신과 ‘합법적’ 인구생산이다. 자유연애의 양적 자유는 마지막 단계를 보류한 채 앞 단계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혹은 마지막 단계를 달성한 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런 생명 시스템은 진실로 생명을 위한 게 아니다. 새 생명이 등록되면 제도는 이를 평생 관리한다. 균질화된 교육, 소외된 노동, 병원에 의존하는 건강... 그리고 사람들은 관리비를 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국가의 홈 파인 회로는 자본의 운동을 촉진 시킨다. 이 회로를 벗어나 ‘관리비’를 내지 않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법’, ‘반사회적’, ‘비도덕적’ 등등의 부정적인 딱지가 붙는다. 결국 정부가 개인의 연애에 감 놔라 대추 놔라 끼어드는 건 국가의 노동자와 소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pp.261-262
     
    16. 어떤 환경에서 살든 스스로를 부적응자로 이해하는 인간의 ‘소외능력’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 종(種)만의 특이성이다. 인간이 지질해진 게 아니라, 지질한 게 인간의 원래 모습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부터 신체적으로 다른 동물들보다 열등한 종이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신체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악기를 발명하며 언어를 개발했다. 이런 시도들이 엉뚱하게 문명을 탄생시켰다. 즉, 스스로가 자연의 부적응자라는 감각이 기상천외한 창의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pp. 326-327
     
    17.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그의 업적, 출신, 능력을 통해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삶의 여러 요소(대부분은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조건)를 일관성 있게 엮어내려는 필사적인 노력 속에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과 간극과 실패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을 제대로 아는 길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풀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완전히 행복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 문제를 견디는 시간만큼 흥미로워지면 또 고유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 실패자에게도, 중독자에게도, 성격파탄자에게도. pp.338-339
     
    18. 그의 최고의 모순은 이러한 자기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핑계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P는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변명하지도 않고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이 아무리 충고를 해도 소용없다. 그는 자기 삶이 병들었다는 것을 아는 병자다. 그리고 병들면 왜 안 되느냐고 되물을 인간이다. p.343
     
    19.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살 필요도 없다. 네가 하는 걱정의 90퍼센트는 스스로 지어 내는 환상에 불과하니, 다시 새롭게 생각해 봐라.” p.345
     
    20. 그렇지만 누구도 처음부터 전형적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스스로를 전형에 맞추기 위해 겪어 온 과정은 다들 고유하다. 그 고유성을 발견할 때 우정이 생기는 것이다. p.360
     
    21. 그리고 확신했다. 사람과 책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곁에 둘 만한 가치가 있다고.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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