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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소설/국외 2023. 11. 20. 12:51
1. ‘친구펀치’라고 아시는지.
예를 들어 누군가의 뺨에 어쩔 수 없이 철권을 날려야 할 사정이 되어 주먹을 굳게 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주먹을 잘 보길 바란다. 엄지손가락이 주먹을 밖에서 휘감아 싸는데 그건 다른 네 손가락을 무쇠로 잠그는 것과 같다. 그 엄지손가락이야말로 우리의 철권을 철권이게 하여 상대의 뺨과 긍지를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는 것이다. 폭력이 더한 폭력을 부르는 것은 역사가 가르치는 필연이니 엄지손가락에서 생겨난 요원의 불길처럼 세계로 퍼져 나가 드디어 다가올 혼란과 비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남김없이 변기에 흘려보내게 되리라.
그러나 여기서 일단 그 주먹을 풀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휘감듯이 쥐어보자. 이렇게 하면 남자 주먹 같던 울퉁불퉁한 주먹이 분위기를 싹 바꾸어 자신 없어 보이는, 마치 마네키네코의 손같이 앙증맞아진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주먹에는 온몸의 증오를 담을 수 없다. 이리하여 폭력의 연쇄는 미연에 방지되고 세계가 조화로워지는바, 우리에게 아직 약간은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을 남몰래 안으로 숨기면 굳게 쥐려고 해도 쥐어지지 않아요. 그 살짝 숨긴 엄지손가락이야말로 사랑이에요.” pp.8-9
2. "젊은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늘 그걸 물으며 살아야 해.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인생이 의미를 갖게 되지.” p.26
3. "자기가 반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하고 반하지 않은 남자랑 결혼하는 것하고, 둘 중에서 고르라면 반하지 않은 남자랑 결혼하는 게 좋겠지?” 하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참신한 설이로군요.”
“왜냐하면 말이지, 반하면 이성을 잃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돼. 따라서 반한 남자를 선택하기보다 반하지 않은 남자를 선택하는 게 이성적인 선택인 셈이지. 긴 인생을 함께할 거니까 판단은 신중에 신중을 가해 합리적으로 내려야 해. 연애 감정이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야. 따라서 연애는 결혼하고는 애초부터 안 맞아. 또 반한 남자와 결혼했을 경우에는 차차 정열이 식어가는 슬픔을 맛봐야 하지만 반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면 식을 게 없어. 처음부터 정열이란 게 없었거든. 게다가 또 이점이 있지. 반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면 그의 바람기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 왜냐,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런 무익한 번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거야. 모름지기 여성은 반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해야 해. 그런데 왜 반한 남자와 결혼하냐구. 왜 모두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 남성은 질질 침을 흘렸습니다. 나는 물수건으로 그의 침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가 나오코라는 여성의 이름을 연달아 불러댔습니다. pp.43-44'소설 > 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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