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비소설/국내 2023. 11. 22. 12:19
1. 타인의 사랑이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끄는 것,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사랑에 응답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p.20
2.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26
3. 타인의 불행을 놓고 이론과 개념으로 왈가왈부하는 일이 드물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길 중 하나는 그 불행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래서 쉽게 분류되어 잊히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p.118
4.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선의 기반이 사실상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일 것이다. 물로 이것은 악에도 다 이유가 있으니 이 세상에 이해 못할 악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다 같이 윤리적 상대주의의 불지옥 속으로 뛰어들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악은 자신이 한 번도 악이었던 적이 없다고 믿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 적어도 이야기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단호한 경계들에 대해서 확신보다는 회의를 품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161
5.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일단은 좋은 질문이라 믿고 계속 물어나갈 수밖에 없겠지. 나는 내 생명의 절반을 살았다. 나 역시 어떤 식으로건 나를 다시 낳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p.214
6.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을 통해서만 만족을 얻는다는 것, 즉 내가 진정한 자기의식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p.220
7. 스티브 매퀸 감독의 수상 소감을 다시 옮긴다. “솔로몬 노섭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인간은 누구나 단순히 생존하는(survive) 것 말고 살아갈(live) 권리가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노예제도로 고통받은 모든 사람들과 지금도 노예로 살고 있는 2100만 명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이것은 훌륭하지만 단순한 말이라고 했던 것을 철회해야 되겠다. 저 2100만 명 속에 내가 카운트되어 있는 것이라면? 동물적 생존과 본래적 실존을 가르는 기준은, 발목에 쇠사슬이 감겨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자유인 39년’의 삶이 아니라 ‘노예 39년’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적으려다가 만다. 이것은 너무 기계적인 반성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적어두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스티브 매퀸의 ‘삶의 의미’ 3부작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자신이 노예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때만 주인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이 이상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영화다. p.224
'비소설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해> -김선현- (0) 2023.11.23 <초등 부모 교실> -차승민- (1) 2023.11.23 <나를, 의심한다> E-Book -강세형- (2) 2023.11.22 <툭> E-Book -박동민- (0) 2023.11.22 <초격차> -권오현- (1) 202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