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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나무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비소설/국외 2023. 11. 30. 10:54
1. 봄이면 벌거벗은 잔가지에 꿈틀대는 생명을 느낄 수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 꽃차례들은 작은 오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간 흔적처럼 보인다. 어느날 잔가지들이 굵어지고 환해지고 불룩해지기 시작한다. 이튿날쯤이면 나란히 짝을 이룬 집게발 같은 잎과 옅은 색, 미색, 분홍색이 감도는 꽃이 잔가지를 뒤덮는다. 봄기운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폭발한다. 낮이 더 길어지면 수액과 상큼한 향, 무성해진 나뭇잎에 몸을 가린 새들의 청아한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나무껍질은 이 모든 것을 예전에도 겪었다. 그러나 늙어가는 버드나무의 앙상한 얼굴과 벚나무의 벗겨지는 껍질도 밝은 빛 속에서는 덜 초췌해 보인다. 11월 초 세상이 온통 습하고 어둑해질 무렵이면 숲은 꺼져가는 잉걸불이나 갈색 설탕 같은 낙엽들과는 조금 다른 운치를 지닌다. p.11
2. 사람들은 사망 사고가 일어났던 곳 근처에 어린 나무를 심어 사고를 기억하기도 한다. 교통사고가 있었던 곳에 어린 버드나무를 심기도 하고 안전사고가 있었던 건축부지 근처에 서어나무를 심기도 한다. 삶이 중단된 사람들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나무는 기억을 간직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장소를 만들어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 이런 살아 있는 기념물들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조용하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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