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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스벤 브링크만-비소설/국외 2023. 11. 30. 10:52
1. 죄책감은 도덕의 나침반입니다. 죄책감이 없다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가 힘들지요. 그러므로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끔 하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p.98
2. 우리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을 때 스스로를 더 잘 돌아보게 됩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존재와 행동을 해명하라고 요청받을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나 자신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지요. p.100
3. 우리는 자아발달 과정에서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오직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반성적 자아를 기릅니다. 갓 태어나 말도 못하는 작은 인간이 칸트가 말한 존엄을 지닌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등 무수히 많은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p.116
4. 진짜 용서, 다시 말해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은 이처럼 무언가를 돌려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무조건적입니다. 왜 용서해야 하는지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유를 묻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용서를 도구로 만들어버리고, 그 의미 자체를 파괴하게 되니까요. p.190
5. “내가 그곳에서 카스트루프 공항에 혼자 서 있는 아버지를 봤을 때, 처음에는 진짜 뭣 같은 기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마중 나오리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너무 실존적인 상황이었다. 뭐 어쨌든 결국 우리는 혼자니까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늘 어른이고 강하며 제멋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훨씬 복잡한 존재로 보였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때부터 영원히. 그 용서는 아버지가 내게 저지른 일에 관한 게 아니다. 물론 아버지가 내게 한 일들 자체는 여전히 용납할 수 없다. 다만 그건 그냥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하는 용서였다.” (아위세 두두 테페) p.195
6. 바로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삶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유한한 시간을 산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경험과 행동은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무심한 우주에서 가치가 생겨날 수 있는 좁은 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덕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영원불멸의 존재라면 용기나 인내, 자기희생 같은 덕은 굳이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존엄성이나 사랑, 용서 같은 것도 크게 의미가 없겠지요. 삶의 유한성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고 궁극적인 삶 그 자체에도 매달리게 됩니다.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굳게 지켜야 할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요나스는 오로지 유한한 존재만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필멸성’이 ‘도덕성’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p.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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