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소설/국내 2023. 12. 7. 11:16
1. 세상은 한 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2. 예리한 칼날이 아니다.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3. “보편적인 삶은, 아니 그냥 삶은, 어떤 것입니까.”
(...)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서져버리는 그 무엇.
4.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해야 할 일만 하더라도, 사람은 살아 있는 이상 돈을 쓰게 된다. 숨만 쉬면서 살아도 비용이 든다. 숨을 쉬는 일, 입을 여는 일 자체가 극도의 무게를 동반하는 것이다. 자신 이외의 한 사람 이상과 관계를 맺고 산다면 감당해야 할 공기의 밀도는 더욱 높아만 간다. 쌓인 벽돌 같은 현실의 어느 틈새에 콧구멍을 들이밀어야 깊은 호흡이 가능한지 시호는 알지 못한다.
5. 그러면 가족이란 결국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담보 및 거미줄 같은 채무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인질인가.
'소설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배수아- (2) 2023.12.07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2) 2023.12.07 <실내인간> -이석원- (0) 2023.12.05 <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1) 2023.12.05 <가해자의 얼굴> -이청준- (1)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