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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박우란-
    비소설/국내 2023. 12. 11. 10:18

     

     

    1. 여자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지각하기 이전에 엄마라는 대상, 타인의 감정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그것을 자기라고 느낍니다. , 엄마의 상태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이지요. 남자아이처럼 좀 더 충족된 내 상태에 엄마를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는 내가 없이 타인인 엄마의 상태에 나를 포함시킵니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이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에 타인을 충족시키거나 타인의 만족을 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만족시키거나 충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감정이나 상태에는 매우 민감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나 감정에는 무딘 여성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지요. pp.19-20

    2. 엄마의 감정찌꺼기들까지 그녀()의 몫이 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남게 되지요. 많은 여성이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맞추며 살다가 결혼해서는 남편, 아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양보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딸에게는 감정적인 배출을 서슴지 않습니다. 딸 아이가 엄마라는 대상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어 준다는 것을 이용하여 감정적인 배출을 서슴지 않는 것이지요. pp.21-22

    3. 엄마들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쉽지만, 실은 엄마가 아이와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아이는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밀착하고 융합되어 버리면 그 누구도 밀착과 의존을 방해할 수 없게 되지요. 그 의존과 밀착에서 자신의 삶의 영역을 장악당하는 것은 아이 쪽입니다. p.41

    4. 말은 일종의 질서를 부여합니다. 아이는 압도적인 감각 앞에서 불안을 경험하는데, 엄마의 설명과 안내, 그리고 제한의 말들은 그런 아이의 상상적인 불안을 안정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엄마가 짜증을 내고 화를 못 이겨 아이에게 퍼부었다면, 반드시 수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수습은 무작정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왜 화를 냈는지를 설명하고, 아이에게 감정을 되물어서 아이가 스스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말로 표현하게 하면, 상당 부분 정서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가질 수 있어요. p.48

    5. 부모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서 아이에게 전달해도 아이가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부모 자신이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 상태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막내딸인 안나 프로이트는 런던 대공습이 일어나는 전쟁 중에도 엄마가 아이에게 사물과 상황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불안이 하늘과 땅 차이로 나뉜다는 것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에 런던 시내의 공습이 멈춘 시간에도 많은 아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반면, 어떤 아이들은 상황을 수월하게 넘기며 즐거운 놀이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는 보고를 했지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케어하는 엄마의 태도입니다.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하며, 그 불안에 엄마가 더 크게 압도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엄마 자신의 불안의 정체를 알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미 외부에서 일어난 불행한 상황을 부모, 특히 엄마가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주하느냐는 아이의 정신 건강에 안정을 주느냐 불안을 주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 현실을 회피하고 과도하게 아름다운 환상을 아이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일어난 현재의 상황과 현실을 엄마 자신이 충분히 직시하고 받아들인 다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아이를 잡아 주어야 하지요. pp.53-54

    6.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태도가 아이에게는 부적절한 죄책감과 죄의식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행동은 규제하지만, 감정과 생각은 무제한으로 뻗어 나가도록 허용하고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정과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것이지, 그것에 판단과 평가, 가치가 들어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요. pp.102-103

    7. 간혹,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우선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난날의 내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무조건 아이 상태에 휘둘리면 위험합니다. 죄책감에 따른 보상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p.158

    8. 부모에 대한 상실(분리, 단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모성에는 헌신과 온전한 돌봄과 자기 포기라는 위대함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능이기보다 매우 의식적이고 선택적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본능이라면 모두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성은 학식이나 배움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좀 더 다른 층위의 성숙함이고 결연함이지요. p.167

    9. 내가 내 문제로 가득 차 있는 한, 내가 나의 결핍과 상처들로 사로잡혀 있는 한, 결코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내 안으로 들일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는 것, 그것만 하면 됩니다. 딸들은 끝까지 믿고 끝까지 함께 견디어 주는 누군가가 엄마이기를 원합니다. 그것만 해 주면, 그다음은 스스로 충분히 일어설 수 있습니다. p.178

    10. 엄마와 아이의 애착 관계가 안정되게 형성된다는 것은 아이가 무엇을 해도 엄마가 자신을 외면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 믿음이 흔들리면 아이 내면에 두려움이 생기고,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 지나치게 순응하게 됩니다. 이때 엄마가 아이의 상태에 공감하고 지켜봐 주지 못하면, 아이는 이 불안정한 관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지웁니다. p.188

    11. 어쩌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상실과 애도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 순간의 내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끊임없이 잃어 갑니다. 그 잃어 가는 것들에 대한 적절한 애도는 나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지요. 잘 잃어 가는 것이 나를 잘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p.234

    12. “너무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좀 괜찮지 않으면 어떤지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p.239

    13. 딸 아이는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지금은 마음이 참 편안해졌는데, 내일 마음이 또 움직여서 힘들면 어쩌지?”

     그럴 땐 이렇게 말해주지요.

     “괜찮아, 엄마는 늘 네 이야기를 똑같이 들어줄 거고, 또 같이 이야기 나눌 거야.” p.248

    14. 때로는 과도하게 퍼 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무의식 속 불안을 보상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것을 타인에게 해주지만, 회복은커녕 원망과 원한이 쌓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고 있는 행위가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이고, 무엇을 원해서인지 모른 채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헌신과 진심은 막상 기대한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절망과 원망으로 바뀌고 분노하게 됩니다. 돌봄을 주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소진되기만 한다면, 잠시 멈추어서 내가 하고 있는 돌봄과 주는 행위 이면에 어떤 기대와 요구가 있는지, 어떤 무의식적 의도가 있는지 의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나의 돌봄이 온전히 내 앞에 있는 타인을 위한 것이라면, 심리적 의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비록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p.251-252

    15.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사랑은 서로의 결핍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내 결핍을 상대가 채워 줄 것이라 믿는 투사에서 일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자신을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를 통한 의존이 아닌 나 스스로도 충분할 때 진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어떤 반영이 없어도 자신의 존재를 믿고 나를 충분히 괜찮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p.261

    16. 나태는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이고 부주의함과 무심함은 사랑이 부재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태와 무기력은 자신을 무력한 자로 고정시킴으로써 아무것도 실천하거나 실행하거나 결행하지 않으려는 회피의 수단일 수 있습니다.

     나태는 단순히 육체적 게으름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소한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운 상태라면, 내 무의식은 어느 곳,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p.269

     

    17. 사소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일을 조금씩 늘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꽤 많은 공을 들여야 하지요. 이것은 내 삶의 즐거움과 쾌락을 타인을 통해 느끼거나 얻으려고 하는 의존을 거두어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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