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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소설/국외 2023. 10. 24. 11:03
1. 키스도 하고 서로를 안기도 하지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차라리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처절한 갈망은 채워지는 일이 없었다. p.18
2.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어쩌다 기억났다는 듯이 만났을 뿐 관계가 연애로 발전될 기미는 거의 없었다. 다만 이 사람이 만나자고 한다는 건 나를 신뢰하며 정말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처럼 착실한 사람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를 향한 동경이 부풀었다. p.68
3. 우리 부모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다가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간다.
그런데도 이 가게에 남아 있는 그의 잔영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세상은 온갖 사람들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p.78
4. 이 상쾌하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오가고 있다. 죽은 사람의 잔영도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사방을 메우고 있다.
다른 시각으로 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 곳인지.
하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 감자와 당근과 껍질콩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리라.
엄청난 일이 있거나 마음속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해도 오늘을 한결같이 살아간다. 이 세상은 그 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pp.86-87
5.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는 없다. 된장이나 간장이 발효되는 것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와인이 맛있게 숙성되는 것처럼 힘겨웠던 일도 시간이라는 요소에 안겨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간다.
계속 집착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뿐이다. p.294
6. “(...)사귀게 되면 결혼하고 싶어지는 그 기분은 알아. 사야캬가 다쳤을 때도 나 그렇게 생각했는걸.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1000배는 더 결혼하고 싶어 해. 그런 마음은 같은 속도와 온도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몹시 피곤해지지 않을까 해.”
“그런 남자, 여자 입장에서는 나쁜 사람이겠지만, 이해는 가. 온도나 속도를 올리는 것만큼은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지 않고는.”
“과연 사야카네. 그렇다니까. 나는 인생이 뒤틀려도 고쳐지지 않을 만큼 ‘무의식중에파’야. 진짜 그래.
딱히 애정이 없거나 불성실한 건 아니야. 다만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살 수는 없고, 자신의 기분을 억지로 끌어 올릴 수도 없어. 나 나름으로는 그녀를 충분히 좋아했어. 길에서 그녀 모습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길가 화단에 핀 제비꽃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작 나 혼자서 그 아름다움을 독점해도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까지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거지.
사랑스러우니까 손을 잡고 키스도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걸 좀 더 진전시키거나 그에 따르는 책임을 수용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 pp.315-316
7. 아름답고, 귀엽고,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이 사람의 미래에 들어간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된 것은 이치로의 심리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리라.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활 속의 한 장면으로 있어 주면 하는 사람, 호의를 보여 주면 반갑지만 그 이상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대가 확실히 있기는 하다. p.340
8. 즐겁게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목적이 있어 오가는 차들 소리, 친구를 부르는 까마귀 울음소리, 내 주변에서 그런 소리들이 조화롭고 따스하게 울리는데 나는 마냥 외톨이였어요.
하늘은 드높고 푸르고, 나는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정성들여 화장도 했고, 이제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참인데, 왠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온 세상이 나에게 전하고 있었어요. ‘그는 너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지는 않는다’하고 말이죠. p.344
9. 하찮은 인간은 이 세상에 없어요.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그건 보는 쪽의 문제라고,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p.347'소설 > 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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