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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소설/국외 2023. 10. 24. 11:27

     

    1.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부터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낱낱이 적어 내려가 보라.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도 좋다. 되도록 그 어휘들과 기억들을 당신에게 떠오르는 그대로 적으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쓴 것이 그다지 좋은 내용이 못 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걸 읽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로, 2학년, 3학년 때까지 조금씩 옮겨가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누구였고, 반 아이들은 누구였는가? 당신은 무슨 옷을 입었던가? 당신이 질투했던 친구나 갖고 싶었던 물건은 없었는가? 이제 약간 더 가지를 뻗어 보자. 그 시절 당신의 가족들이 휴가를 떠난 적이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보라. (...)
    더 구체적인 것들도 짜내어 보라. 거기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듣고, 입었는지도. 저 끔찍한 꽃무늬 수영모자라든가, 남자들의 이상한 반바지라든가, 관능적인 이모가 입었던 칵테일 드레스라든가, 그 드레스가 너무 날씬해 보여서 그녀가 실제로 따분한 인생을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를 알아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pp.43-44
     
    2. 그러니 하던 대로 계속 밀어붙이고, 커다란 실수와 시행착오를 범하라. 많은 종이를 다 써버려라. 완벽주의는 졸렬하고 냉혹한 형태의 이상주의이다. 반면 뒤죽박죽 무질서야말로 예술가들의 진정한 친구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어른들이 부주의하게도 말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실패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 걸음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써야 할지를 깨닫기 위해서도 실패는 필수다. p.80
     
    3. 각각의 인물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그걸 알아야만 무엇이 급선무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발견을 행동으로 표현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인물들이 그 일을 시작하거나 매달리거나 방어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그때 가서 당신은 그들을 좋은 상황에서 나쁜 상황으로 끌어내리거나, 다시 처음의 자리로 데리고 오거나, 나쁜 상황에서 좋은 상황으로 회복시키거나, 상실한 것을 되찾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는 위기 상황에 두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긴장도 만들 수 없을 것이고, 당신의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키 선수를 생각해 보라. 얼음 위에 하키공이 하나 정도 있는 게 좋다. 공이 없다면 그는 꽤나 우습게 보일 것이다. p.113
     
    4. 그녀는 단편소설을 쓸 때 가끔씩 적용하는 공식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ABDCE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은 Action(행동), Background(배경), Development(발전), Climax(절정), Ending(결말)을 말한다. 당신은 먼저 액션부터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유인하기에 충분하고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백그라운드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서서히 발전시켜서, 그들이 무엇에 가장 관심을 쏟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것들로부터 플롯과 드라마, 행동, 긴장이 자라날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이 절정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날 때까지 그들을 계속 몰아가고, 절정을 기점으로 주인공들은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결말이 따라온다. 이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무슨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pp.122-123
     
    5. 그러므로 진정하고, 침착하게 숨을 들이쉰 다음 직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당신의 머릿속 화면을 흘끔 곁눈질해 보라.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나 이야기의 세부사항, 또는 방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지나치게 통제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이 캐릭터나 저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직관적인 느낌을 얻게 된다. 습관화된 이성의 통제를 멈추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결국 해낼 것이다. 만약 당신의 캐릭터가 갑자기 자기 주머니에서 반쯤 먹어 치운 당근을 끄집어낸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라. 이것이 정말 있을 법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가서 점검해 보면 된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면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닌 직관은 통속적인 말들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공감이나 통찰의 순간에 도달하더라도, 그런 통찰을 시시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속물들의 말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직관은 진짜이고 풍성하며 신선하고 가능성으로 넘치는 데 비해, 통속적인 생각은 들으나 마나 한 진부한 말인데다 유통기한도 지났고 자기만족적인 것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p.188
     
    6. 스스로를 무의식과 기억과 감수성의 강물, 캐릭터들의 삶의 강물과 한방향으로 정렬하면, 그 강물은 빨대를 통과하듯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다.
    KFKE(K-FUCKED) 방송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그 강물과 어긋나게 된다. 그럴 때는 자리에 앉아서 심호흡을 하고, 자신을 고요하게 가다듬은 다음,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p.199
     
    7. 나의 정신과 의사는 질투심이 이차적인 감정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배신감이나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며, 만약 내가 그 오래 묵은 감정을 다스린다면 아마도 그 질투의 감정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내게 이렇게만 말했다. 그 작가는 내가 나의 과거를 치유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 작가 덕분에 내가 평생 지속된 내면의 감정을 꺼내 볼 수 있었다고. 그 감정이란 ‘다른 가족들은 우리 가족보다 더 행복하고, 다른 가족들은 우리에게 없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것이 나의 내면과 다른 사람의 외면을 비교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도 했다. 계속해서 그 감정을 충분히 느껴보라고 했기에, 그렇게 했다. 그 기분은 몹시 더러웠다. pp.205-206
     
    8.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초반의 날짜가 적힌 색인 카드들도 발견할 것이고, 거기에는 그가 나를 어떻게 골탕을 먹였는지, 어떻게 나에게 수많은 의문을 품게 만들었는지가 적혀 있다. 그에게 내가 품었던 일종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을 것이다. 1993년 9월 17일로 기록된 다음 색인 카드처럼 말이다.
     [샘과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빌과 애데어와 함께 그들의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춥고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샘의 손을 잡고 가던 빌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무너무 좋은 냄새가 나지 않아, 샘?” 샘도 역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치 맛있는 음식 냄새라도 맡듯이. 그러더니 어둠 속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꼭 달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p.228
     
    9.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매우 정직하며 당신이 하는 말이 전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진실의 검으로 사람을 벨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냥 그 검으로 사람을 가리킬 수는 있지만 말이다. p.245
     
    10. "애니? 왜 그런 고민을 해?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짦아.“ p.263
     
    11. 문제는 ‘받아들이기’이다. 우리는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고, 상황을 바꾸고, 불쾌한 기분을 제거해야 한다고만 배웠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당신이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이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당신은 비로소 스스로를 놔주고 재충전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간혹 이런 시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써서 종이 한 장을 채우라고 독려한다. 글쓰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관한 기억, 꿈, 혹은 의식의 흐름을 300단어로 써보라고 시킨다. 그냥 장난삼아서, 그저 그들의 손가락이 관절염에 걸리는 것을 막으려고. 어쨌든 그들은 매일 300단어씩 쓰기로 약속했으니까. 나쁜 나날에는 일이 굴러가는 대로 그냥 놔두는 편이 낫다. p.273
     
    12. 스스로 자기 운명의 통치자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물에 떠서 아등바등하는 소금쟁이들이고, 물속의 송어들에게는 그 모습이 훤하게 잘 보인다. 나 같은 사람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진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 온갖 규칙을 만들어 낸다. 나 자신에게 그런 규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냥 곤충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살면 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강가에 얼룩진 이끼풀들을 잡아당기고, 자신의 곤충 다리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강물을 노 저어 가는지를 알아차리면 된다고 말이다. p.276
     
    13. 볼링은 그것의 가장 즉각적인 성격 때문에 삶에 가까웠다. 즉, 당신이 공을 던지고 나면 곧바로 핀들이 쓰러진다. 나는 또한 샘에게 신성함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공을 거기에다 던져 대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언제나 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공급되니까). p.291
     
    14. 오래 전에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여자가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의 아름다움과 힘에 완전히 홀려 버렸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그 고릴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릴라는 우리 창살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고, 비록 표지판에는 그러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그녀는 고릴라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즉시 잠에서 깬 고릴라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창살을 찢고 나와 그녀를 발톱으로 마구 할퀴고 상처를 냈다. 그녀는 거의 죽기 직전이다. 동물원 직원이 달려와 가까스로 마취 총을 쏘아서 고릴라를 쓰러뜨렸다. 여자는 당장 집중치료실로 이송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여자는 천천히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나흘 후 드디어 방문객을 맞을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문병을 왔다. 여자는 거의 눈을 뜨지도 못한다.
    “세상에, 너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인다.”
    친구가 말하자,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통이라고......”
    여자가 말했다.
    “넌 고통이라는 게 뭔지 몰라. 그(고릴라)는 전화도 하지 않고, 편지도 없어.”
    pp.311-312
     
    15. "너희가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얻는다 해도 만족할 수 없어.“ (영화 ‘쿨러닝’ 中) p.328
     
    16. 그 사제는 열다섯 살가량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을 해보니 겉모습만 어려 보일 뿐 속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이 흐트러져 있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산만하고, 들떠 있고, 허탈감을 느끼고, 패배감을 느끼며, 그 모든 것 속에서 어떤 도달하기 어려운 평온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은 결코 그런 평온을 줄 수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세상은 우리에게 평화를 줄 수 없지요. 우리는 오로지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난 그게 싫어요.”
    내가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희소식은 똑같은 이유로, 세상이 그것을 빼앗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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