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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얼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비소설/국외 2023. 10. 24. 11:18

     

     

    1. 그 어느 날 저녁, 나는 예감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축복인 동시에 저주요, 은총이자 액운이며, 한계를 모르는 중독이라는 사실을.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까닭에 사랑한다는 것을. p.15
     
    2. 하지만 많은 낭만주의 시들이 지닌 내면성이라는 게 나는 참 마음에 들지 않고, 아니 때로는 정말이지 넌더리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진부한 서정성과 태평스러운 목가시풍, 무아경의 자연 예찬과 기이한 비합리주의, 과장된 열광과 도취, 그 모호함과 평온함, 이 모두가 어찌나 철없고 갑갑한지, 어찌나 편협하고 촌스러운지. p.73
     
    3. 로베르트 무질은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예술은 무엇을 남기는가?”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우리, 변화된 우리를 남긴다.” p.87
     
    4. 러시아인 체호프. 그는 질풍노도의 혈기 방장한 젊은이가 아니었고, 이단자도, 폭도도 아니었으며,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톨스토이 백작 같은 설교자도 아니었고, 도스토옙스키 같은 집념도 없었다. 그는 결투를 해본 적도 없고, 무슨 비밀 모의에 가담한 적도 없었으며, 해외로 도피한 적도 없고, 체포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적도 없고, 하다못해 그럴듯한 러브스토리 하나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부정형 문장들에 마저 쐐기를 박자면, 체호프는-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처럼- 이 땅에 살았던 위대한 작가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알랴, 어쩌면 굉장히 사랑받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호감 가는 작가로 꼽힐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체호프를 사랑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쌓아왔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 물론 이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얘기라는 것도 잘 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에 많고도 많으니 말이다. 그가 인류를 향해 이렇게 외치기라도 했었나? “세상 사람들이여, 서로 포옹하고, 이 입맞춤을 온 세상에 전하시오!”라고? 천만의 말씀. 그는 열아홉 살 때부터 지방신문에 짤막한 콩트를 발표하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이런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학비를 벌기 위한 일거리였을 뿐이다.
    남들이 그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했다. 그는 자신이 쓰는 소설이나 희곡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로 늘 괴로워했다. 그는 분명히 진보를 믿는 사람이었으나, 그가 기대를 건 쪽은 다름아닌 자연과학 분야였다. 톨스토이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큼 작가로서 인정받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는 자신의 생업에 충실해 시골 의사 노릇을 계속했다.
    그는 죽기 전에 내가 쓴 것들은 몇 년 안에 전부 잊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기 책은 어차피 러시아 사람 아니면 이해 못할 테니 번역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행된 체호프의 책은 전부 몇 부 정도일까? 5000, 아니 6000만 부? 총 몇 개 국어로 번역되었을까? 70? 혹은 80, 아니 그 이상? 모름지기 작가란 화학자만큼이나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그 자신의 말을 그는 당연히-그리고 다행히-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에겐 피조물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사랑에 빠진 아가씨들이건 좌절한 지식인들이건, 탐욕스러운 상인이건 살맛을 잃은 부인네들이건, 심지어 죄인이나 무뢰한, 술주정뱅이와 사기꾼들에게까지도.
    고골이 사회 고발자였다면 톨스토이는 재판관이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스스로 피고인의 자리에 섰다면 체호프는 그저 증인의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그는 결코 작중인물 위에 군림한 적이 없으며, 다만 항상 그들 곁에 서 있었다. 러시아의 다른 작가들이 목청 높여 신음하고 절규할 때, 그는 그저 나직나직 속삭였다. 하지만 지구의 절반이 곧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도대체 요만큼도 발전이란 걸 이뤄내는 경우가 없다. 그의 작품엔 중심인물도 없고, 이렇다 할 갈등도 없고, 대개 줄거리도 빈약하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무위 속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차를 마시고, 주로 하찮고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간혹 살짝 연애질을 하고, 간혹 철학을 논해본다. 한마디로 체호프의 인물들은 권태롭고, 그리고 모두가 불행하다. 다만 독자는 그렇지 않다.
    그가 쓴 모든 것들은 이중의 토대를 가진다. 세기말 러시아를 그린 이 생생한 장면들은, 작가가 의도했든 안 했든, 고스란히 인간 삶에 대한 근원적인 비유다.
    벚꽃 동산의 중심무대는 흔해빠진 벚꽃 동산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농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지의 주인 랴네프스카야 부인에게 그곳은 순수와 무구의 장소다. 대학생 트로피모프의 눈에 비친 동산은, 농노들을 동원하여 가꾼 잔학한 폭정의 산증거다. 신증 부자인 상인 로파친에게 그곳은 자신이 일궈낸 급격한 사회적 지위 상승의 표시, 승리의 징표다. 그는 이 정원을 산다. 마치 하겐슈트룀이 뤼벡에서 멩슈트라세의 집을 사들이듯이 말이다.
    벚꽃 동산 역시 한 가족의 몰락사를 담고 있으니,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부덴브로크 가의 딸 토니의 사촌인 셈이다. 세 자매에서 체호프는 그저 제정러시아 시대 농촌의 참담한 실상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 농촌의 참담함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동경, 사랑에의 희구를 아울러 보게 된다. 이렇게 그에게 오면 모든 것은 강한 상징이 된다. 우리의 프랑크푸르트 지방 시인이 일찍이 여기에 어울리는 멋진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뿐이다.” 사실 체호프는-그가 수차 고백했듯이- “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문학 중 가장 시적인 산문드라마와 단편을 썼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대사들의 핵심은 대개 화자들이 말로 옮기지 않는 표현들 사이의 정지 장면에서 들을 수 있다. 바로 이 침묵이야말로 이 작품들의 근간을 이룬다. 왜냐하면 체호프는 속삭임의 절규, 고요의 통곡을 창시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참혹한 고통으로 말을 잃은 인간을 보여주었다. pp.117-119
     
    5. 라이히라니츠키는 평론가의 첫째 의무는 정직함이며, ‘명료함은 예의라고 정리한다. 그가 어느 작가에 대해 말한다면,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중립적인 평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중용은 아마도 그와 가장 거리가 먼 덕목이리라. 세련된 전문용어나 사려 깊은 미사여구로 애매모호하고 포장하는 법도 없다. 어떤 작가, 어떤 작품에 대해서건 자신이 판단하는 것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예찬할 땐 너그럽고 열정적인 수다쟁이, 비판할 땐 무례하도록 신랄한 싸움닭이다. p.352(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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