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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 -황정은-
    비소설/국내 2023. 12. 21. 11:45

     

     

    1.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엔 혐오를 드러내는 잔인성이 특별히 잔인한 어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안에있다고 말하는 페이지가 있다. 그러므로 외적 혹은 내적 법으로 적절히 막아내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약자를 찾아 난폭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p.18

    2.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로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p.76

    3. 주기적으로 책장을 비워야 할 정도로 집에 책을 모으며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짐작하겠지만 이것은 독서, 장서 질서의 대혼란이며 컨트롤 붕괴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이고 자기 불신과 기만과 외면을 소소하고도 잔잔하게 이어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p.80

    4. 나는 출신이라는 걸 생각한 적이 없고 어디든 개똥밭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니, 자기 삶을 그런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니, 놀랍고 상심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예전만큼 나를 흔들지 못한다. 괜찮지는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진폭이랄지 파형이랄지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이들의 나쁜 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해 당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고, 멀어지라고, 어떤 형태로는 그를 돌볼 수는 있겠지만 그의 비참을 자기 삶으로 떠안지 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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