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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종이다> -김종성-비소설/국내 2023. 10. 25. 10:14
1. 정리해보면 한자 ‘녕(寧)’에는 ‘자식이 살아계신 부모를 뵈러 집으로 가는 것’,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자식이 집에서 거상하는 것’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녕’은 부모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간에 자식들이 그 곁으로 모이는 것, 부모와 자식이 어떤 형태로든 함께 있는 것을 뜻한다.
‘寧’의 고전적 의미를 고려해볼 때, 우리는 이방원이 아들들의 대군호 혹은 군호에 일률적으로 ‘녕’을 집어넣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아들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들들이 한 울타리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꿈꾼 것이다.
(...) 이방원은 쫓겨나는 전(前) 세자 이제에게 ‘寧’을 더해 ‘양(讓)’까지 부여했다. (...) 이방원이 이제에게 양보할 양(讓)의 칭호를 부여한 것은, 이제가 쫓겨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마음 넓은 큰형이 유능한 동생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떠나는 것 같은 인상을 연출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pp.58-59
2. 그러나 왕권 강화나 중앙집권이 제대로 된다고 해서 백성의 삶이 반드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백성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역사서에서 왕권 강화에 힘을 실어주는 사항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은 고대 역사서가 기본적으로 군주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고대 역사서에는 당연히 군주의 관심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서에 반영된 군주의 관심사가 주로 군주나 왕실의 이익과 관련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옛날 군주가 백성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군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이 최고의 권력∙부∙명예를 얻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었다. 우리가 알 만한 역사서에는 모두 그러한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군주는 사회 전체의 공익을 운운하지만 실은 왕실의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기업 총수도 본질적으로는 사익을 추구한다. 이쯤 되면 과연 군주의 모습과 기업 총수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p.100
3. 세종 이도가 얼자들의 법적 지위를 악화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그가 얼자들을 특별히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조치를 내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가장 주된 이유는 양인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양인의 수를 줄이는 것은 노비 수를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양인도 소작농 같은 지위로 농토에서 일했지만, 조선시대 농토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노비였다. 당시 고용주들은 자기와 똑같은 신분의 직원을 다루는 것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다루는 데에만 익숙했던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국가가 노비 수를 늘려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 수가 늘면 농업 생산량이 는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양인으로부터 거두는 조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국가는 농업 생산성 증가로 인한 조세의 증가분과 양인 감소로 인한 조세의 감소분을 비교해서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크다고 계산한 듯하다. 세종 역시 이전의 군주들처럼 백성을 나라의 주인이 아닌,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대우한 것이다. 물론 신하들의 요구에 밀려 법률을 개정한 측변도 있었지만, ‘부왕이 제정한 법률을 바꿀 수 없다’며 버틸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세종 역시 노비를 바라보는 특권층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세종 시대 공노비의 출산휴가를 늘린 것도 기본적으로는 국가 재정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세종 이전에는 관청에 속한 여자 노비가 출산하면 7일간의 휴가를 줬다. 그러던 것이 세종 때에는 여자 노비에게 산전 1개월 및 산후 100일의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 30일 휴가를 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백성에 대한 세종의 애정도 반영되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책적 고려도 담겨 있다. 세종 12년 10월 19일자 《세종실록》에는 이것이 장래에 공노비가 될 갓난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국가 노동력의 안정적 확보라는 고려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이다.
(...) 세종이 국부의 증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고 하여, 그가 나쁜 임금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부 증진을 열심히 추구하는 왕은 바람직하고 훌륭한 군주다. 여기서 백성에 대한 세종 이도의 재정적∙경제적 고려를 설명한 이유는, 그를 휴머니스트로만 보게 되면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의 진짜 고민을 올바로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왕들처럼 세종 또한 국부 증진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그의 다른 모습들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pp.124-126'비소설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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