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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쯤,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희주-
    비소설/국내 2023. 10. 25. 10:38

     

    1. 그녀의 감정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져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누군가를 원망한다는 사실을. 그 원망은 자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 혹은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 혹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p.43
     
    2. 원망은 내가 받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무기라는 걸. 나에겐 방패지만 상대에겐 창으로 느껴지는 그런 무기라는 걸. 그때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하려고도 하지 않아서, 내 슬픔이 너무 커서 아빠의 슬픔은 상상조차 하려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요. p.45
     
    3. 내 경우에 한해 생각해보면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의 마음속은 주변 사람이 낸 상처보다 자기 자신이 낸 상처로 얼룩져 있다. 어쩌면 나는 오빠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원망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혼자 창으로 찌르랴, 방패로 막으랴 바빴는지도. p.46
     
    4.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내 사랑이 상대에게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결국 사랑이란 자기만족일 뿐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달은 게 바로 그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고 싶은 모습으로 주는 게 아닌, 상대가 받고 싶은 모습으로 주는 게 사랑임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p.74
     
    5.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했다.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만 폭력이 아니라, 거친 말을 쏟아내는 폭언만이 폭력이 아니라 누군가를 나의 뜻대로, 개인을 전체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것 또한 폭력이 아닐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동체를 파괴하지도 않으며, 그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일 뿐인 문제에서도 해라, 하지 마라 간섭하는 것 역시 폭력이 아닐까? 내가 불편하니 네가 희생해라,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라, 너의 취향을 다수에게 맞추라는 건 폭력이 아닐까? “며칠 굶어봐야 이것저것 안 가리고 먹지라는 말 속에는 상대방을 이해하겠다는, 너의 삶을 상상해보겠다는 마음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상대의 머리채를 잡고 광장으로 끌어내 비웃고 조롱할 뿐이다. pp.130-131
     
    6. 목줄에 대해 생각했다. 내 목엔 목줄이 걸려 있다. 언제부터 목줄이 있었는지, 누가 걸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걸려 있었을 것이다. 내가 걸었을 수도 있고, 부모님 혹은 또 다른 누군가가 걸었을 수도 있다. 사랑, 두려움, 미움, 질투, 열등감, 편견, 고집, 욕망, 집착... 나를 뒤흔드는 다양한 감정이 목줄 안에 담겨 있다.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 긁기, 길이의 목줄을 감고 있다. 중요한 건 그 목줄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 있느냐다. 나를 뒤흔들 권리를,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권리를 누구한테 주었는가? 내 목에 걸린 목줄을 내가 단단히 쥐고 있는가?
    어느 순간 나는 내 목줄을 내가 쥐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엄마 손에, 아빠 손에 목줄을 내어주고선 끌려가지 않으려 주저앉아 버티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끌고 가라 내어주고선, 뒤흔들라 내어주고선 끌려가지 않으려 흔들리지 않으려 버티는 모순. p.178
     
    7. 예전에 어떤 선생님은 나를 가리켜 희주는 시동 걸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려. 하지만 시동이 걸리면 내처 달려 나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슬로 스타터(Slow Starter), 어쩌면 나는 모든 세상에 낯을 가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처음 하는 일, 처음 사용하는 물건,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겪는 상황. 그 모든 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 조용히 탐색하고 지켜보고 알아보고 오래 생각해 본 다음 달리기 시작하는 사람. 이런 사람한테 필요한 건 시간이리라.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와 믿음이리라. pp.186-187
     
    8.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p.210
     
    9. 마음가짐이 말로 나타나기도 하고, 말이 마음가짐을 결정하기도 한다. 말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지만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영혼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나라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시작한다면 그 일을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어떤 일의 시작점이 이나가 아니라면 그건 좋은 출발이 아닐 것이다. 그런 자세로 살아도 될 만큼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pp.21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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