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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비소설/국내 2023. 12. 28. 13:21
1. 작은 일에 실망하느라 함께하는 현재를 무심히 떠나보내지 말아야겠다. p.27
2.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것처럼 이제는 아득해진 이들을 생각한다.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힘 같을 때가 있다면, 애초 혼자였던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몫을 살아야 할 시기가 온다. 그렇게 멀어질 때가 있다. 멀리 있어도 멀지 않은 것은, 마음 안의 우주 때문이다. 같은 것을 바라보며 어떤 느낌에 닿을 때 우리는 함께일 수 있다. 이번에 하지 못한 얘기는 다음에 하면 되니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잊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모은다. 어디서부터 말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다시 만난다면 ‘그때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봤어’,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p.37
3. 가득 쌓였던 눈은 햇살이 닿자 녹아내렸다. 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서 고드름이 녹는 소리를 듣고, 얼었던 눈이 다시 물이 되어 떨어질 때 바닥에 패는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볕이 비추는 쪽으로 얼굴을 대고 한참 서 있었다. 뺨에 닿는 온기를 모으며, 올 한 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물렀던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꼽아보았다.
현재에 머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것에 맞추다 일과 삶을 혼동했다. 익숙한 것을 소홀히 대하고 사라진 후에야 그리워했다. 내게 없는 것을 잡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떠나는 시간과 찾아오는 시간도 어김없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은 항상 나를 도망 중인 상태로 만들던 ‘현재’가 내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p.67
4. 주말에는 주사위를 던져봐야겠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주사위가 멈출 때 마음에 고이는 느낌을 따라가 봐야겠다. 이번 판의 나쁜 숫자도 게임 전체에서는 어떤 징검다리가 될지 재단할 수 없으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다음 판은 또 모르는 거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는 인생을 아는 것 같다. 이번 판은 연습 게임이어서 다행이란다. 어차피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일과 노력할 수 있는 일이 함께 오니 가봐야지.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두 호흡 사이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행인 일이 참 많다. p.220
5. 기억의 저장소는 따뜻한 소리만 담기에도 벅차니 정말 중요한 소리만 남기고 헝클어진 소음은 담아두지 말아야겠다며 소소한 다짐을 한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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