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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 -김지영-
    비소설/국내 2023. 11. 6. 10:30

     

     

    1. 일상은 주체의 삶과 개념을 실질적으로 매개하고 분절해내는 공간이며, 개념은 일상에서 그 적법성을 시험받고 사회적 승인을 얻는다. p.27
     
    2. 일상은 평범하고 무가치한 일들의 연속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을 규율하는 다양한 제도와 가치관 및 사회 기구의 본질이 경험 생활의 영역으로 육체화되어 있다. 일상을 관통하는 규율들은 지역, 계층, 젠더, 세대 등 서로 다른 사회 구성원에 의해 다양하게 전유되며, 이질적 조건과 욕망을 지닌 주체들은 다양한 방식의 타협과 복종, 일탈과 전복의 과정을 통해 이 규율들을 구체적 삶의 형상으로 투사해낸다. p.37
     
    3. 아버지의 세계에서 사랑은 행위의 문제이다. 살면 사는 것, 혼인하면 혼인하는 것. 이 동어반복의 문장은 행위와 개념의 분리를 무력화한다.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삶도 사랑도 행위를 통해 ‘실행’되는 것이었다. 그는 ‘동사’의 세계를 산다. 그러나 아들은 사랑을 ‘생각’하고자 한다.  그에게 사랑은 철저한 이해와 열렬한 감정이다. 아들은 사랑을 ‘사고’하고 자신이 ‘사고한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한다. ‘사고되는 사랑’, 그것은 사랑을 동사의 영역에서 명사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연애는 이 명사화된 사랑, 개념화된 사랑의 자리에 위치한 언어였다. p.100
     
    4. 한국에는 ‘명랑’이라고 하는 독특한 서사 장르가 존재한다. 오늘날 ‘소설’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만화류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장르명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유쾌하고 코믹한 내용의 ‘소설’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명랑소설’이라는 말이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또 대중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1950년대에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유머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였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일제 강점기로 가면 사정은 더욱 달라진다. 일제강점기 ‘명랑’은 장르 코드이기보다는 총동원 체제가 마련한 정신 개조 운동의 차원에서 자주 등장했고, 유사한 맥락에서 1960년대 군사정권 아래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던 시민 운동 또한 ‘명랑’을 주요한 표어로 사용했다.
     다채로운 ‘명랑’의 쓰임새와 시대 간에 빚어지는 의미의 차이는 ‘명랑’이란 용어의 함의와 ‘명랑’을 표방하는 장르의 코드가 시대마다 서로 다른 사회적·문화적·정치적 힘들 속에서 한국 사회와 관계 맺어왔음을 알려준다. 1950년대의 ‘명랑소설’과 1980년대의 ‘명랑소설’이 다른 것처럼, 1980년대 대유행한 MBC 텔레비전 프로그램 <명랑운동회>의 ‘명랑’과 일제 식민지 체제의 ‘조선 명랑화 프로젝트’의 ‘명랑’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하는 동시에, 연속적인 정치적 권력의 구도가 또한 숨어 있는 것이다. pp.250~252
     
    5. 1956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김형근이 『경향신문』에 실었던 칼럼 (1)과 1955년 발간된 최초의 옴니버스 명랑소설집 『명랑소설 7인집』의 「후기」 (2)는 공통적으로 당대 사회의 긴급한 필요조건으로 웃음과 명랑을 강조한다. 두 글이 명랑의 필요를 강조하는 공통의 이유는 생존에 있었다. 오랜 역사적 수난과 전쟁, 뒤처진 근대화와 이데올로기 싸움이 겨레를 고통에 빠뜨려왔고, 그러한 고통과 울분, 애수에서 벗어나려면 ‘명랑’하려는 노력과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전후의 폐허와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 욕구, 근대화의 의지야말로 당대 사회에서 ‘명랑’이 지녔던 함의의 근저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50년대 근대국가 건설의 의지를 반영했던 ‘명랑’은 권력 장악에 대한 자유당 정권의 의도와 부분적으로 접속하면서도 근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자유당 정권의 의도와 부분적으로 접속하면서도 근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그 안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희망과 활력, 의지를 함께 담은 기표였다. 따라서 1950년대의 ‘명랑’ 개념은, ‘배제’라는 부정적 조형술에 중심을 두고 위에서 아래로의 강압적인 국가주의적 규율 담론을 형성하며 국가에 의해 그 의미장이 주도되었던 일제강점기의 ‘명랑’과 일정한 차이를 빚는다. 1950년대 ‘명랑’은 권력이 요구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으면서도 대중의 능동적 상상력이 작동하고 투사되는 언표였던 것이다. ‘명랑’은 이제 배제와 억압의 부정적 조형술 이상으로 새로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활성화되는 긍정적 조형술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는 언표로 변모했다. pp.268-269
     
    6. ‘명랑’의 장르 코드를 해석하려 할 때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밝음’이라는 자연현상에서 유래한 어휘의 비유 가능성이 고도의 추상적 긍정성을 그 의미장에 부여했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가 창출될 수 있는 역동성을 지니는 기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밝고 맑다’라는 함의가 내포하는 자연적 긍정성을 통해 다양하게 비유되고 전유될 수 있는 개방적 유연성을 지닌 어휘로서 ‘명랑’이 갖추고 있는 의미의 탄력성이,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얼마든지 전유될 수 있는 역동성을 어휘에 부여한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명랑’에 의미를 부여한 주도적 주체는 시대별로 변화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명랑’의 의미를 파시즘적 체제의 규율 담론을 구축하는 데 활용했고, 이러한 어휘의 의미장은 1960년대 군사정권을 통해 다시 적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1950년대의 문화적 활기 속에서 ‘명랑’은 새로운 근대 민주국가를 꿈꾸는 대중 주체들에 의해 신사회에 대한 소망과 꿈을 담은 기표로 활용되곤 했으며, 유쾌한 웃음을 표상하는 대중문화의 장르 코드로도 전유되어 그 의미장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그 결과 1960년대 ‘명랑’은 국가주의적 규율 담론과 자유주의적 삶에 대한 소망과 기원,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기반을 둔 질 낮은 욕망의 문화 코드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 혼종적인 의미장을 지닌 복합적 어휘로 작용하게 된다. 서구의 ‘유모어’나 ‘코미디’와 구분되는 한국 특유의 장르 코드로서 ‘명랑’지 지닌 문제적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명랑’ 서사 연구는 코미디 같은 보편적 장르 원칙에 입각하기 이전에 한국적 장르 코드의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pp.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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