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비소설/국외 2023. 11. 13. 10:24
1. 파리는 힘이 없어서 찻잔 한 개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황소를 찾아내 그 귓속에 들어가 윙윙거리기 시작한다. 황소는 공포와 화를 참지 못해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중동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수 없어서 9.11 테러로 미국을 도발했고, 미국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대신 중동의 도자기 가게를 파괴했다. 이제 폐허가 된 그곳에서 그들이 활개를 친다. pp.36-37
2. 땅콩 한 알을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픈 다른 다람쥐들이 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 인간들이 그러모으는 땅콩(돈 많이 버는 직업, 큰 집, 잘생긴 배우자)도 우리를 오래 만족시키지 못한다. p.62
3. 만일 내가 찰나적 쾌감을 행복으로 여기고 점점 더 많은 쾌감을 갈구한다면, 쉬지 않고 그런 감각을 뒤쫓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마침내 쾌감을 느낀다 해도 그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과거의 쾌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을 계속해도 만족은 지속되지 않는다. 쾌감을 갈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만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쾌락을 빠르게 뒤쫓을 것이 아니라 놓아줄 필요가 있다. p.67
4. 역사 공부의 목표는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조상들이 상상할 수 없었거나 우리가 상상하기를 원치 않았던 가능성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를 지금 여기로 이끈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를 품을 수 있다. 역사 공부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지만, 적어도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p.92
5. 후대에 와서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파라오의 몰락과 신의 죽음을 모두 긍정적인 변화로 생각한다. 어쩌면 인본주의의 붕괴도 결국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본래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위대한 상수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p.103
6.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알고리즘은 특정한 계산이 아니라 계산할 때 따르는 방법이다. p.122
7. 튜링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임을 깨달았다. p.172
8. 오늘날 인간이 이 행성을 지배한 것은 인간 개인이 침팬지나 늑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지능과 도구 제작 능력도 분명 중요했다. 하지만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정교한 뇌와 능란한 손으로 우라늄 원소가 아니라 아직도 부싯돌을 쪼개고 있을 것이다. p.187
9. 혁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혁명은 대개 대중이 아니라 소규모 선동가 조직에 의해 일어난다. 당신이 혁명을 시작하고 싶다면, “몇 명이나 내 생각을 지지할까?”라고 묻지 말고, “내 지지자들 가운데 몇 명과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라. p.189
10. 문자의 역사에는 이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차고 넘치지만, 일반적으로 효율적인 행정은 손해보다 이점이 많았다. 적어도 정부의 관점에서는 그랬다. 펜 한 번 놀려서 실재를 바꿀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통치자는 한 명도 없었고, 실패에 직면하면 더 방대한 문서를 작성하고 더 많은 법령, 칙령, 명령을 발표해서 수습했다. p.232
11. 각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장대한 연극 속에서 한 역할을 맡는 것도 아니므로, 끔찍한 일들이 닥쳐와도 어떤 절대자가 와서 우리를 구원하거나 우리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한 결말도 슬픈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은 어떤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의 세계에는 목적을 믿지 않고 오직 원인만을 믿는다. 근대에 어떤 모토를 붙인다면, 그것은 ‘개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가 될 것이다. p.279
12.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감수성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서 키울 수 있는 추상적인 소질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사용해야만 무르익고 성숙하는 실용적 기술이다. p.329
13. 과학은 자유주의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도 약화시킨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분리할 수 없는 단일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인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물론 내 몸이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내 몸과 마음이 날마다 변형과 변화를 겪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여 나 자신과 닿으려 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단 하나의 분명하고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내 진정한 자아이고, 거기서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한이 나온다. 자유주의가 성립하려면 나는 오직 하나의 진정한 자아를 가져야만 한다. p.399
14.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 (...) 이야기하는 자아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고, 대개 중요한 순간과 최종결과만을 이용해 이야기를 엮는다. 경험 전체의 가치는 중요한 순간과 결말의 평균으로 결정된다. (...)
경험을 평가할 때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의 지속시간은 고려하지 않고 ‘정점-결말 법칙’을 채택한다. 다시 말해 이야기하는 자아는 정점과 마지막 순간만 기억해 둘의 평균으로 경험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p.405
15. 하지만 21세기의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나를 완벽하게 알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 외부 알고리즘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실수를 덜 하는 외부 알고리즘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알고리즘에게 나에 관한 점점 더 많은 결정과 인생의 선택들을 맡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p.451
16. 기술 진보는 우리의 내적 목소리들에 귀 기울일 마음이 없다. 기술 진보는 그 목소리들을 통제하기를 원한다. 이 모든 목소리를 생산하는 생화학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즉시, 우리는 스위치들을 자유자재로 조작해 때에 따라 볼륨을 높이고 낮추며 인생을 훨씬 더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다. 주의 산만한 변호사에게는 리탈린을 주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병사에게는 프로작을 주고, 결혼생활이 불만인 아내에게는 에스시탈로프람을 줄 것이다. p.499
17. 인본주의의 계명이 “네 감정에 귀 기울여라!”였다면, 데이터교의 계명은 “알고리즘에 귀 기울여라!”이다. p.537
18. 데이터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했던 일을 호모 사피엔스에게 하겠다고 위협한다. 역사의 경로에서 인간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창조했고, 모든 것을 그 네트워크 안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평가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부추겼다. 인간이 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했으므로, 우리 인간이 네트워크의 업적을 가로채고 우리 자신을 창조의 정점으로 보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훨씬 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으므로 그들의 삶과 경험은 평가절하되었고, 수행하던 기능을 멈추는 동물은 멸종했다. 하지만 인간이 네트워크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창조의 정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성시한 바로 그 잣대가 우리를 매머드와 양쯔강돌고래처럼 잊힌 존재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p.541-542'비소설 > 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이 가기 전에 해야 하는 말> -아이라 바이오크- (0) 2023.11.13 <혼자가 좋다> -프란치스카 무리- (1) 2023.11.13 <애도 수업> -캐시 피터슨- (0) 2023.11.13 <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 (0) 2023.11.13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 고야마 데쓰로- (0)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