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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비소설/국내 2023. 11. 13. 10:40

     

     

    1. 초등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9시까지 등교’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12년 동안 9시 등교를 훈련받고 받아들이게 되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이 된다. p.30
     
    2. 옥상이 위험해서 개방하기 어렵다면 1층 교무실이라도 꼭대기 층으로 올려 보내고 1층은 아이들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p.35
     
    3.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은 창의력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교실 높이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2.6미터로 동일하다. p.45
     
    4. 공평과 평등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똑같은 공간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학교 건축물을 양산하고 있다. 평등과 전체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숭고하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이들은 평등을 획일화를 통해 이루려 한다. 평등은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만약에 내가 5천 원짜리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데 당신이 만 원짜리 수제 햄버거를 먹는다면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 원짜리 수제 햄버거를 먹을 때 내가 5천 원짜리 쫄면을 먹는다면, 나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각기 다른 두 종류의 음식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성은 행복의 가능성을 높인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공부한다고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p.50
     
    5. 이렇게 여러 명의 MC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히어로 영화는 현대사회의 탈중심 현상을 보여 주는 한 예다. 과거에는 어느 것 하나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식의 수직적 위계가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여러 개의 중심이 있는 수평적 구조가 특징이다. (...)
     이처럼 탈중심의 시대적인 흐름은 최신 건축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일본의 ‘가나자와 미술관’이다. p.74
     
    6.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5층짜리 상가를 분해해서 거리에 길게 늘어선 단층차리 연도형 가게를 배치해야 한다. 연도형 가게들은 거리에 활기를 주고 사람들을 걷게 만들어 도시를 살리는 ‘무기’ 중 하나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가게들을 항가라는 한 ‘점’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한 ‘점’에서 다른 ‘점’인 상가 건물로 이동한다. 이렇듯 대형 아파트 상가 건물은 도시를 ‘점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점’이 아닌 ‘선’이다. 선형으로 상업가로가 조성되어야 사람들이 걸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p.128
     
    7. 왜 같은 제국인데 로마제국은 천 년 넘게 지속된 반면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멸망했을까? (...) 학자들은 그 이유를 몽골제국 군사력의 근간이 말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제국과는 달리 말 때문에 본인들의 근거지인 몽골 초원을 떠날 수 없었고, 따라서 정복한 국가에서 지배력을 강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제국이 유지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 설명에 동의하기 어렵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몽골인은 유목 민족이다. 유목민은 목초지를 따라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텐트에서 지냈고, 무거운 건물을 짓지 않았다. (...) 이들은 빠른 이동과 전쟁에는 능했지만 무언가를 남기는 데는 미숙했다. pp.163-164
     
    8. 어떤 건축물이 로마의 건축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통일된 재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건축의 형태’는 그리스에서 차용해 가져왔지만 ‘재료’는 그리스처럼 대리석을 사용하지 않았다. 바로 어느 지역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벽돌이 통일된 건축의 재료가 되었다.
     로마가 유럽을 정복하고 오랫동안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제국이 된 비밀은 ‘벽돌’과 ‘아치’에 있다. p.170
     
    9. 무거운 건축물을 지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데는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남들의 의지를 꺾기 위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무거운 건축을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과시다. p.176
     
    10. 10년 전쯤 한 선배 건축가가 비정형 건축물을 만들려고 했을 때 국내에서는 조선업이 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 지원을 요청했지만 낮은 제작 비용과 기술 유출을 꺼려해 거절당했다고 한다. 건축의 기본은 비가 세지 않게 하는 ‘방수’다. 그리고 선박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방수다. 그러니 비정형 건축물은 배를 뒤집어 놓은 듯이 만들면 간단히 완성된다. 국내 조선 업계의 불황이 시작되면서 울산, 거제 같은 도시들이 활력을 잃고 있다. 이들의 기술력으로 배만 만들지 말고 건축 같은 종합산업 분야에 접목시킨다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pp.237-238
     
    11. 수메르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는 건조하지만 물은 풍부한 지역이다. 두 문화권에서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같은 큰 강이 있다. 이 강들은 공통적으로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다. 따라서 강의 상류와 하류의 기후대가 다른 특징이 있다. 덕분에 상류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고 그 물이 흘러 내려와 강의 하구는 건조기후대이지만 물이 풍부하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두 문명권 모두 사람이 모여 살아도 전염병이 잘 돌지 않고, 필요한 물은 강이 공급해 주는 곳이라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들은 인류 역사 초기에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큰 도시를 형성할 수 있었고, 최초의 문명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었다. p.244
     
    12. 우리 전통 건축의 디자인은 나무를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나무 기둥은 하부가 물에 잠겨서 썩지 않게 주춧돌 위에 세웠다. 땅이 습하니 마루는 땅에서 들린 높이에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청마루는 디딤돌을 밟고 올라간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어서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까래를 길게 뽑아서 처마를 만들었다. 지붕의 코너 부분의 처마는 대각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처마보다 더 길어진다. 이 코너 부분을 ‘추녀’라고 한다. 처마의 길이가 길다 보니 그림자는 더 깊게 드리워진다. 그런 이유에서 코너 부분을 받치는 나무 기둥이 물에 젖으면 그늘에서 마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마를 들어 올리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 처마의 끝이 올라간 것은 코너의 나무 기둥에 햇볕이 더 들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해의 입사각이 높아져서 위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처마는 더 급하게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위도가 낮은 동남아시아 지역 지붕의 추녀는 더 급하게 올라간다. pp.248-249
     
    13. 필자가 주장하는 법칙 중에 ‘3차선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칙은 차도가 3차선 이하인 경우에는 보행자의 흐름이 이어지지만 4차선보다 넓으면 단절된다는 것이다. (...) 3차선 이하의 도로가 블록 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차선 도로는 무단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단 횡단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길 건너편을 그냥 건너갈 만큼 가깝게 느낀다는 것을 뜻한다. pp.261-263
     
    14.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라고 말한다. -영화 ‘블랙 팬서’ 中-
     
    15. 모든 건축 요소의 근본 원리는 다 자연에서 온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이나 건축이나 둘 다 ‘중력’을 이겨 내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p.341
     
    16. 우리나라의 주거지는 온돌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항상 1층이었는데, 보일러의 도입으로 드디어 고층 주거와 고밀도 도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고밀화된 도시가 되면서 가장 혜택을 본 계층은 농업보다는 상공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자신의 물건을 사 주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인구구조와 경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온돌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유럽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서 고층 주거가 보급되었고 도시화가 정착되었다.
     고밀화된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길드’ 같은 동업 조직을 통해 상공업 계층이 성장할 수 있었고 따라서 시민혁명과 근대화가 가능했다. 최초로 왕의 권력을 나누어 가지게 된 사건인 ‘명예혁명’은 1688년에 영국에서 일어났는데, 이 당시 런던에는 3층, 4층짜리 건물들이 있었다. 18세기 파리에는 6층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다. 19세기 조선 한양의 사진을 보면 아직까지도 단층 건물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도시가 아직 고밀화되지 못한 상태였고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신흥 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농민 중심으로 진행된 1894년 ‘동학혁명’은 실패한다. 하지만 1970년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도 보일러 덕분에 12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었고 1980년대에는 많은 국민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1987년 6월항쟁은 성공한다.
     이런 내용의 사회학 논문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건축적으로 유추해보면 도시 고밀화와 사회 진화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도시의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사회의 민주화와 진화를 이루어 낸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변화는 ‘온돌과 아궁이’가 분리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pp.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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