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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비소설/국내 2023. 12. 5. 12:23

     

     

    1.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p.26

    2.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p.78

    3.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길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싶었던 거다. p.79

    4.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잘 관찰해보자. 원래는 호기심이 솟고 흥미롭게 느껴지던 것들이 다 심드렁하다. 만사가 팍팍하게 느껴지고 별일 아닌데도 짜증스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뾰족하게 군다. 아주 작은 변수에도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 모든 것은 내 몸과 마음이 나에게 전환을 요구하는 사인이다. 이때 방구석에 가만히 눕거나 앉아서 그냥 나아지길 기다리면 머리는 무거워지고 기분은 점점 가라앉는다. 계속 누워 있으면 누워 있어서 힘들고,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느라 힘들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늪에 빠져들려 할 때는 변덕스러운 감정이 나를 맡겨둘 게 아니라 규칙적인 루틴을 정해놓고 내 몸과 일정을 거기에 맞추는 편이 좋다. p.164

    5.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言靈이라 부른다. 언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놓는다. 내 주위를 맴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p.189

    6. 우리는 실패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타인의 평가가 내 기대에 털끝만큼도 못 미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그리고 끝내 어떤 식으로든 잘 될 것이라고.

     (...) 일희일비 전전긍긍하며 휘둘리기 보다는 우직하게 걸어서 끝끝내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에 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하다. p.231

    7.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본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만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부동자세로 감이 떨어지길 계속 기다리자니 턱이 아프고 온몸이 저리다. 간절히 기다리는 감은 떨어질 기미도 안 보이고, 나무에서는 온갖 벌레만 내려와서 약 올리듯 몸을 기어다닌다. 근질거리고, 당연히 고통스럽다.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당하면서 분명 어떤 노력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들, 이를테면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뭇가지를 자르든, 온 힘을 다해 나무둥치를 흔들든, 마을로 내려가 장대를 가져와서 감을 따든, 그 시간에 다른 일들을 시도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고통 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pp.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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