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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일기> -김연수-비소설/국내 2023. 12. 5. 12:26
1. 변함없이 눈부신 그 여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아름답지요.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돼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지요. 모든 것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세상사가 못마땅해지는 내게 나치 수용소까지 다녀온 이 할머니가 덧붙인다.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봅니다.” 이런 할머니들이 있어 나는 또다시 장래를 희망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의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웃는 눈으로 선한 것만 보는 할머니가 됐다. p.31
2.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집단적 무지 혹은 망각을 기반으로 축적된 부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의 축적을 위해 한국 사회는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켜 관리한다. 물속 아이를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부모들에게 미개하다고 말하는 까닭이, 그들을 ‘순수한 유가족’이라고 일컫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고통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한, 지금까지의 관행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적폐는 적폐를 청산할 수 없고 국가는 국가를 개조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향한 연대에서 나온 책임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63
3.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절망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p.94
4. 자신은 옳게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애쓰는 일을 알렉산더 테크닉에서는 ‘함(do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뜻한다. 피아노 연주에 빗대자면, 손가락 사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잘못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은 옳다고 느끼며 계속 연습하는 일이 그렇다. 이런 건 선생이 교정해주기 전까지는 고칠 수가 없다. 고집스런 둔재의 불행, 어쩌면 인간 모두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할 것이다. (...)
이에 대한 해법은 자신은 옳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 알렉산더 테크닉의 용어로는 ‘undoing’이다. 이건 ‘함을 하지 않음’으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 (...) 우선 습관적인 행동에서 벗어나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보고, 나만은 옳게 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여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pp.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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