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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방> -정시우-비소설/국내 2023. 12. 27. 11:21
1. 정시우: “현상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이면의 사정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박정민: “유기적인 건데, 이면을 우선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엔 더더욱. 인터넷 댓글만 봐도 그렇잖아요. 현상만 바라보고 달리는 의견들이 너무 많아요. 보면서 생각해요. ‘지금 이걸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더 들여다보지 않지?’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은 하나, 조금 더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p.44
2.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좆밥근성’이 필요하다. 세상에 진정한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소수이고, 그런 소수들조차 확신을 얻기 위해 자기만의 안간힘을 쓰니까. 오래전 신형철 문화평론가를 인터뷰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씨네21》에 영화칼럼을 기고하고 있었고 나는 그가 쓰는 글의 열혈 팬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그런 대단한 문장들이 나오는 걸까. 돌아오는 답변은 놀라웠다. 그는 어떤 영화를 쓰겠다는 게 결정되면 극장에 가서 대여섯 번 관람하고 메모하며 글의 개요를 짠다고 했다. 이게 맞나 안 만나 불안하면 극장에 가서 다시 확인하고, 놓친 대사가 있으면 그 대사 때문에 또 극장에 간다고 했다. 아, 천하의 신형철 평론가도 이렇게 엉덩이 싸움을 하는데, 하물며! 위안이 됐다. 세상에 정답은 없으며, 자기만의 방법과 근성으로 불안을 뚫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pp.66-67
3. 정시우: “노력과 결과가 늘 비례하지는 않죠.”
천우희: “네. 그런 문제에 골몰하고 있을 때 전도연 선배님께서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희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어ᄍᅠᆯ 수 없다는 게 나쁜 게 아니야. 포기의 의미도 아니고.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뿐인 거야“라고 하시는데, 그 순간 비로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저는 사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자체를 나약한 것으로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고요. 하지만 이젠 알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p.88
4. 박준 시인이 쓴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많은 부분이 좋지만, 특히나 좋아서 마음에 밑줄 그어 저장해둔 문장은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라는 구절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말이란 생물과 같은 면이 있어서 타인 안으로 파고들어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말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어떤 말은 위로를 전하고, 어떤 말은 인생을 바꾸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말로 아파하는 나에게 위로가 됐던 것도 말이었다. “너의 탓이 아니야”라는 말. pp.348-349
5.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자책하던 날, “계속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오정세의 말에 전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위로를 받았었다. p.370
6. “오디션에 합격하고 합격하고 합격한 게 쌓여서 지금의 오정세가 된 게 아니라, 떨어지고 떨어지고 수백 번 떨어진 게 지금의 저를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 전체를 실패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마음. 함부로 실패나 성공을 해석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빛이 나는 배우였다.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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