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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김혼비-비소설/국내 2024. 1. 11. 11:38
1. 유독 여행 분야에는 ‘그건 오답입니다!’라고 정답지를 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탄의 대상은 단지 중년 단체 여행객만이 아니었다.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A가 일컬은 ‘그런 사람들’은, “수박 겉핥기식 패키지여행이나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여행까지 와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요즘 애들” “인터넷 정보만 믿고 현지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관광객용 식당에 뭣도 모르고 줄 선 사람들” “역사적 명소에는 관심도 없고 쇼핑만 하다 가는 애들”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여행기 곳곳에 등장했다.
아니, 그러면 좀 안 되나요. 어차피 여행지에서 몇 달 살 것도 아니라면 누구도 수박 속까지 다 파먹을 수 없는데, 그냥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가 오면 안 되나. SNS를 잠시 끊고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는 즐거움과 그때그때 SNS 친구들과 여행의 순간을 활발히 나누는 건 엄연히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데. 뭣도 모른 채 그냥 가보고 싶던 곳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오면 안 되나. 그래서 맛이 없었다면 그건 실패의 경험인가. 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정원 사진을 찍고, 예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미술관에 가면 좀 어떤가. “유명한 스콧에서 사진 한 장씩 박고 가는 게 여행의 전부”면 또 어떤가. 타인이 더 나은 경험을 해보길 진심으로 바라서 하는 조언과, 무작정 던져놓는 냉소나 멸시는 분명 다르다. ‘세상의 빛을 보자’는 게 ‘관광(觀光)’이라면, 경험에 위계를 세워 서로를 압박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떠보면 좋지 않을까. pp.29-30
2. 당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는 점도 공포의 요인이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고통을 떠올리며 더 심하게 얼어붙곤 했다. 그런데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맞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고통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통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니 그게 또 두려움을 한결 줄였다. 적어도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이것만도 굉장한 발전이었다. 우리는 보통 폭력에 제압당하기 전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먼저 제압당하니까. p.48
3. 꼰대의 특징 중에는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지식만이 대체로 옳다고 여기는 상태’ 또한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특징이 극복하기 더 어렵다고 느낀다. 남에게 충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이게 가장 두렵다. pp.70-71
4. 충고를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고민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타인의 앞선 경험들은 적어도 내게는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하다못해 청소기 하나를 사는 데에도 다양한 후기들을 찾아 읽는다.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 앞에서라면 더더욱 다양한 후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다. 오직 청소기의 흡입력과 무게에만 꽂혀 있다가 누군가의 후기를 읽고서야 비로소 손이 안 닿는 가구 밑까지 완벽히 청소하는 기능에 생각이 미쳤고, 심지어 그게 내가 가장 원하는 기능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p.73
5. ‘당신은 당신의 생일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지 않거나 바빠서 축하를 잊고 지나가면 서운함을 넘어 이글이글 분노가 끓어올라 그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망하라고 저주하고 구체적으로 복수를 계획하고 그래요?’ 대부분 아닐 것이다(문명사회 인간의 상식을 믿고 싶다). 근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왜 조상들은 그런 영혼일거라 믿어요? 이런 의문 또한 있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저 사람은 기념일 챙겨주지 않으면 앙심을 품고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힐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때요? 당장 ‘나를 대체 뭐로 보고!’하는 말이 나오지 않나요?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자신은 그런 취급받으면 기분 나쁠 거면서 조상들에겐 대체 왜 그래요?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 오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조상이 되는 순간 애정 결핍에, 밥 집착증에, 속 좁고 개념 없는 악귀나 괴력난신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거 어디 억울하고 무서워서 마음 편히 죽을 수나 있겠나. 내가 조상이라면 밥을 못 얻어먹는 것보다, 그깟 밥 좀 안차려준다고 후손의 삶을 망가뜨리고 저주를 내릴 평균 이하 인격체로 취급당하는 것이 더 화가 나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pp.84-85
6. 때로 이 ‘기본’이라는 지나치게 확고한 단어는, ‘기본’ 바깥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맥락과 상황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A와 나는 성장한 과정도, 몰두하는 대상도 다른데, A의 맞춤법을 보며 “왜 맞춤법을 잘 모를까?”를 따져볼 생각조차 안 했다. 왜? 기본이니까. 기본이라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어느 정도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기본’이라고 하는 거니까. 기본 소양이라는 게 때 되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듯 세월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데, 그것을 배우고 갖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와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본’으로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배제되기 쉬운 불리한 어떤 입장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설사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적성과 성향, 강점과 약점은 얼마나 다른가.
게다가 ‘기본’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한 부분을 그 사람의 전체로 확장해버리는 힘이 있다.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을 좌우할 정도로. p.103
7.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p.135
8.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무능력했지 무기력하기까지 할까 봐!”라고 덮어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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