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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낌의 미술관> -조경진-
    비소설/국내 2023. 11. 20. 13:14

     

     

    1. ‘예술작품은 특이한 사물이자 느낌이다.’

    ‘모든 특이성의 느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럴만한 이유는 그럴만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p.10

    2. 게슈탈트 심리학은 지각의 조직화 원리가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그 핵심은 전체는 부분 이상이라는 원리, 그룹화의 원리, 형태-배경의 원리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정보 이론의 관점에서도 다뤄질 수 있다. 우선 세 가지 용어를 생각해 보자. 게슈탈트, 정보, 엔트로피. 게슈탈트는 주어진 부분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거나 패턴화된 전체이며, 정보는 어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혹은 행동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고, 열역학 개념인 엔트로피는 정보론의 관점에서는 숨겨진 정보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당장 목이 마른데 내 앞에 어떤 액체가 있다고 하고, 이때 그것이 마실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할 수 있는 지식, 그것이 정보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이에게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지 알려 준다면 그것도 정보이다. 그 사람이 위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에겐 그 음식이 위에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 더 필요할 것이다.

     정보가 알려진 것, 조직화된 것을 의미한다면, 엔트로피는 알려지지 않은 것, 무질서도, 즉 조직화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처음 세 그림에서 우리의 지각이 주어진 것을 어떻게 조직화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처음 두 그림은 세로의 반복으로보다는 가로의 반복으로 보일 것이다. 그게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 그림에서 우리는 정보를 취득한다. 이것들이 정보가 된다면,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1)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것 (2) 최대한 단순한 도식과 패턴으로 파악할 것 (3) 저장과 전달의 용이성을 추구할 것 등이다. 게슈탈트 지각은 생존과 진화의 요구, 지식과 그 공유 방식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본능적 대응일 것이다. 세 번째 그림의 지각 방식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검고 둥근 8개의 점에 겹쳐진 입방체로 주어진 것을 조직화한 패턴은 위의 요구로부터 얻어진 정보이다. 이렇게 조직화하지 않으면 이 그림을 파악하기도 전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당신이 지각의 패턴화를 통해 주어진 것에서 정보를 얻었다면, 거기엔 항상 숨겨진 정보, 엔트로피가 있다. 처음 두 그림을 세로의 반복으로 읽는 방식, 지그재그로 읽는 방식, 그 외에 이 그림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들의 패턴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관점의 전환, 상상력,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뿐이다. 위의 세 요구는 사물들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을 때의 요구이며, 너무 많이 알려진 오늘날에는 오히려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사물을 볼 것이 더 요구된다. 모든 사물에는 숨겨진 정보가 있고, 알려진 것에는 항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알려지기를 기다리는 사물의 매혹이고, 그 매혹을 얻기 위한 관점의 전환, 그리고 뚜렷한 도식화된 형식의 발견일 것이다. 네 번째 그림은 이러한 관점에 적합하다. pp.30-31

    3. 한 개념은 내포(뜻)와 외연(개념이 지시하는 세계 안의 모든 사물들)을 갖는다. 사과의 개념은 ‘둥글고 파랗거나 빨갛고 신맛과 단맛이 나는 과일’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 뜻(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현실적 과일은 사과의 외연이다. 그래서 개념은 모든 사과를 ‘사과’로 부르고 그런 전체의 대상을 추상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필요하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려면 꼭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것을 감각하는 데 꼭 개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빨강에 대해 생각하거나 ‘저것은 빨강이다’라고 판단하지 않고서도 빨강을 느낄 수 있다. 빨강을 느끼는 것은 ‘저것은 빨강이다’라는 개념적 판단 직전에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의 감각 사건이다. p.45

     

    4. 엄마는 아이가 Q라리 언어ㄷ와 개념의 세계로 들어오길 바라죠. “너에겐 이게 어떻게 느껴지니?”라고 묻지 않고, “이렇게 생긴 게 뭐지?”라는 질문은 퍼부으면서요. 이런 질문은 느낌에 대한 폭력입니다. 이런 유의 질문은 소통을 위해 느낌의 추상적, 객관적 대상에만 초점을 두지 느낌 자체나 그 과정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어요. p.50

    5.식한다는 건 특정 느낌과 그 대상에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집중은 강도를 불러요. 마치 내 살이 넓고 평평한 사물과 만나는 것과 길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과 만날 때의 차이랄까요. 어쨌건 바디감을 의식한다는 건 바디감에 집중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바디감이 큰지 적은지도 구별할 수 있고, 각각의 바디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 바디감의 느낌은 더 섬세해지고 풍부해집니다. 물론 바디감과 다른 커피맛과의 조합에서 오는 또 다른 특이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게 각자의 취향, 곧 사물의 특이성과 그 조합, 그리고 거기에 나 자신의 느낌의 특이성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취향이 됩니다. p.82

    6. 미국의 철학자 수잔 랭거가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예술은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정서적으로나 감각적으로 부각하고 선명하게 하는 일에도 관여합니다. 예술은 사물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달리 될 수 있는 가능성들, 그렇지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 또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식엔 잘 떠오르지 않는 것들을 바깥으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p.148

    7. 실재라는 말은 보통 현상이라는 말과 함께 쓰입니다. 그러니 실재를 말할 때는 현상을 생각하고 현상을 말할 때는 실재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현상과 실재, 이렇게 쌍으로 생각해야죠.

    쉽게 말하면, 현상은 우리에게 의식적으로 감각이나 지각 안에 나타나는 것이고, 실재는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는 것과 독립해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p.171

     

    8. 한 인간과 내가 관계 맺는 관계로서 현상들은 무한하고, 어떤 현상이 더 실재에 부합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들은 대개 이 무한한 현상들 중, 정면의 시각적 형태가 다른 감각적 현상이나 다른 시각적 현상보다 대상의 실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더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원자 수준이나 양자 같은 수준에서도 아닌 겨우 고정된 형태가 있는 감각적 현상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은 실재의 극히 일부를 실재인 양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자의식 추상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켜 온 근원적 능력이라고 말하지만요. 결정적으로 예술은 실재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다른 관점과 차원을 드러냄으로써 극히 일부의 인위적 현상이 실재를 대변하면서 나타나는 불충분성과 고착화에 저항합니다. 예술은 끊임없이 우리가 갖는 실재에 대한 믿음이 딱딱해지는 것을 방해하고 다른 믿음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유포하죠. 이건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p.178

     

    9. 시각적 착시는 본다는 것의 본성이 미리 고정되어 주어진 것을 정신 안에 재생산(재현, 표상)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창조적인 일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사례인 거죠. 착시 현상은 지각의 오류도 지각의 특수한 사례도 아니며, 차라리 본다는 것의 진실입니다. 착시는 고정된 객체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표상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에서 보면 오류나 환영이겠지만, 봄이라는 사건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의 사건입니다. 아직 무엇이라고 결정할 수 없는 무엇을 우리가 결정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p.224

     

    10. 나의 느낌과 유사한 느낌을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느낌 자체를 대신 느껴줄 수는 없어요. 세상엔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느낌 자체는 대신 느껴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나의 느낌이 있어야 비로소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나의 느낌에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느낀다는 건 곧 나 자신을 만드는 일이고 일차적으로 나를, 이차적으로 나 뒤의 타자를 책임지는 일입니다. p.334

     

    11. 예술은 우리가 주관적 실재, 즉 느낌과 정서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은 우리의 내적 경험에 형식을 부여하며, 그 결과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랭거- p.342

     

    12. 넓은 의미에서 의식은 주체적 형식, 즉 주체가 여건을 받아들이는 형식이며, 사물들에도 주체적 형식, 즉 느낌의 자기 형식이 있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모든 주체적 형식이 의식이라 불리는 것은 아니며, 의식은 인간이나 고등 유기체의 지성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고도로 발달된 주체적 형식이다. p.328

     

    13. 앵그르의 그림을 보면 퀸 블루라는 감각은 옷이라는 지각 대상의 속성이었죠. 그러나 진정한 감각과 느낌은 대상을 구성하긴 하지만 대상으로 환원되거나 귀속되진 않아요. 그래서 감각을 어떤 재현적 대상에게도 귀속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다룰 수 있는 추상화는 재현이 가진 표상적 동일화의 작용에서 우리의 느낌을 해방하는 기능이 있어요. p.348

     

    14. 알레고리는 어원상으로 ‘다르게 말하다’ 또는 ‘모아서 말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물론 반어도 다르게 말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는 것에 가깝고, 알레고리는 진짜 다르게 말하는 겁니다. 반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겁니다. p.382

     

    15. 은유와 알레고리 모두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 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체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은유가 두 사물 간의 어떤 속성이나 측면들 간의 유사성에 의해 성립한다면, 알레고리는 그런 유사성이 필요조건은 아니다. 알레고리는 ‘모아서 말한다’에 방점을 두어야 하고, 은유는 도식적 비교라는 데 차이가 있다. 알레고리는 abcde를 통해 z를 말하는 것이라면, 은유는 구체적이고 이미 잘 아는 B를 통해 추상적이고 말하기 힘든 A의 본질을 대비시킨다. (...) 결국 알레고리는 하나를 말하기 위해 여러 요소의 조합이 필요한 경우이며, 은유는 하나를 직접 다른 하나에 연관시킬 때 발생한다.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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