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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앉아씁니다> -아사이 료-비소설/국외 2023. 11. 29. 10:27
1.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인 요시나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에는, 나가사키에서 막 상경한 사랑스러운 대학생 요노스케가 이웃으로부터 “빈틈이 있다”고 평가받는 장면이 나온다. 말만 갖고 보면 부정적인 평가 같지만, 그것은 결코 얼간이나 멍청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이야기 종반에 그 이웃은 도쿄 생활에 익숙해진 요노스케에게 “어딘지 빈틈이 없어졌군”하고 말하며 서운해한다.
그 장면을 읽었을 때의 나는 이미 상경한 지 몇 년 되어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 특유의 빈틈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낯선 동네의 낯선 누군가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사는 기술이 몸에 익어 버렸다. 결국 낯선 동네의 낯선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횟수가 뚝 줄어들고 만 것이다. pp.21-22
2. 애초에 서프라이즈란 0에서 플러스 감정을 낳는 것이지 날조한 마이너스 감정을 0으로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아니, 그냥 나쁘고 촌스럽다. p.27
3. 어렸을 때는 일상에서 고대하던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좀 더 높았던 것 같다. 급식의 디저트에 젤리가 따라 나오는 날, 오후 수업 2시간이 없어지고 특별활동을 하게 되는 날, 체육 시간에 수영장 이용이 시작되는 날, 교통기관에 영향을 줄 대설도, 물류에 영향을 줄지 모르는 대형 태풍도, 그러면 안 되지만 역시 고대했다. 지금은 당연히 고대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고대하는 일이 드물어진다. 나는 스물여섯 살이나 되어 그런 사실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열린 어떤 토크 이벤트와 사인회에서 한 독자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신작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고대한다는 말이 거기에 있었다.
어른이 되면 고대하는 일이 드물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필시 어른이 된 우리가 누군가의 ‘고대’를 낳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작업을 가로막을지도 모르는 여름휴가나 대설이나 태풍을 이제 고대하지 않게 된 것이리라. p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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